
나무의 수명을 일관되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종류마다 다를 뿐 아니라, 사람으로서는 태생에서 사망까지 나무가 살아가는 긴 시간을 살펴볼 도리가 없어서다. 비교적 오래 사는 나무와 일찍 수명을 마치는 나무를 가늠하는 게 고작이다. 일반적으로 꽃이 화려하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나무들은 수명이 짧은 편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생식활동 과정에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가 쇠잔하는 때문이다.
우리의 봄을 찬란하게 밝히는 벚나무는 수명이 짧은 편이다. 나라 안의 유명한 벚꽃길에 서 있는 큰 나무들이라고 해 봐야 겨우 150년 안팎의 세월을 거친 나무다. 1000년을 넘게 사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수명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벚나무는 370년쯤 된 것으로 추정하는 ‘구례 화엄사 올벚나무’다. 식물분류학에서는 ‘올벚나무’로 부르지만 일반인으로서는 벚나무와의 차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그냥 ‘벚나무’라고 부른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 나무를 심은 때는 병자호란을 치른 직후쯤이다. 두 차례의 전란을 거친 인조는 외적의 침입에 대한 대책으로 무기를 확충하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인조는 성능 좋은 활의 재료가 될 벚나무를 전국의 산과 들에 심으라고 지시했다. 임진왜란 때부터 승병을 일으켜 구국의 전사로 나섰던 화엄사의 승려들도 나라의 정책에 따라 절집 주변 곳곳에 벚나무를 많이 심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구례 화엄사 올벚나무’는 그때 심은 나무 가운데 한 그루다.
12m 높이의 화엄사 올벚나무는 그런데 찾기가 쉽지 않다. 이름과 달리 화엄사 경내에 있지 않아서다. 나무는 화엄사 경내로 들어서는 관문인 불이문 동쪽에 위치한 산내암자 ‘지장암’의 요사채 뒤편 언덕 기슭에 서 있다. 화엄사를 자주 찾은 사람들도 ‘구례 화엄사 올벚나무’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이유다. 나라의 평안을 지키기 위해 심어 키운 한 그루의 나무를 오래 바라보아야 할 찬란한 봄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