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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특별법에 의한 새로운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위원회의 성과적인 활동을 위해선 위원들 간 합의정신이 지켜지고, 전문위원들의 전문성이 제대로 발휘되며, 별정직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등 필요한 과제가 많다. 다른 과제들도 중요도가 낮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적 소명의식 차원에서 특별히 한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바로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5·18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미 역사적, 법률적 평가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북한군 개입설이나 빨갱이 프레임을 여전히 주장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 진상규명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좌우 스펙트럼에 따른 갈등은 거의 치유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 출범하는 진상규명위원회도 최초 발포 명령자, 암매장 의혹 사건 등 조사의 진행에 따라 새로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여지도 없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서든 공정한 조사가 진행되었다고 평가받기 위해서는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예컨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초 발포 명령자로 밝혀지든, 밝혀지지 않든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른 반발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면 그 어떤 정치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민 다수로부터 위원회가 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게 된다. 

절차적 정당성은 20세기 중반 이후 민주주의 법치 원칙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왔다. 우리 사회에서도 행정절차법의 제정을 비롯해 절차적 정당성을 제고하는 각종 법제도가 구비되어 있다. 아쉽게도 이번 위원회 출범의 법적 근거가 된 특별법에는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을 명시한 조항이 없다. 물론 명시적 규정이 없더라도 법적인 의미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더욱 강조할 필요성은 있다.

진상조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우선 위원회를 구성하는 위원들과 곧 선발되게 될 별정직 공무원들이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위원회 활동의 기본 원칙으로 절차적 정당성의 당위성을 늘 환기해야 한다. 별정직 공무원 채용 후 절차적 정당성의 의미와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법학 전문가들의 교육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조사 활동이 시작된 이후에는 철저하게 절차적 정당성의 원칙에 따라 모든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나아가 조사의 대상이 되는 기관과 당사자들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진상규명에 제대로 협조해야 한다. 

모든 진상규명은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을 바로잡고자 하는 관계자들의 사명감이 아무리 절박하다고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이 보장되는 전제 위에서 확보되어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 진상규명은 반대 측으로부터 새로운 거짓주장으로 매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할 일이 많고 최장 3년으로 예상되는 활동 기간 동안 격무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는 과거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조사기록물 60만쪽 분량을 재검토하는 것만도 겨우 몇 십명에 불과한 위원과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해야 할지 가늠이 안된다. 

절차적 정당성은 민주주의 법치 원칙에서 내용적 정당성과 함께 핵심적인 양대 기둥이다.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만 새로운 위원회의 활동이 5·18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권영태 고려대 법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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