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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컨트롤 타워 ‘국민안전처’(안전처)가 출범했다. 소속 정원만 1만명이 넘는 거대 조직이다. 국무총리실 산하인 안전처는 당초 육상(경찰·소방)과 해상(해경)으로 나뉘어 있던 재난 대응 체계를 통합 관리하게 된다. 아울러 1차관, 2본부(차관), 4실 체제로 구성되고 소속 기관은 중앙119구조본부, 중앙해양특수구조단, 중앙소방학교, 국가민방위재난안전교육원 등 모두 12곳에 달한다. 고위직만 12개 자리가 늘어나고 또 앞으로 330명의 공무원을 추가로 뽑는다고 한다. 장관 아래 3명의 차관을 둔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재난이 발생하면 국무총리가 중앙대책본부장을 직접 맡아 지휘권을 행사하게 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세월호 참사 이후 추락할 대로 추락한 정부의 신뢰 회복을 기대해 볼 만하다.

그러나 안전처는 출범부터 ‘승진 잔치’ 및 ‘전문성 부재’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초대 장관에 군 출신을 임명한 것도 비난을 받고 있다. 크게 ‘안전(安全)’은 예방과 수습으로 나눌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 봐야 이미 늦다. 따라서 안전사고는 예방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 안전처 정부조직 개편안을 보면 예방보다는 사후 수습에 역점을 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번 안전처 정부안을 보면서 15년 넘게 산업현장에서 ‘안전 보건’ 업무를 해온 필자로서 무엇이 진정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것인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11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지난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 8명이 사망한 5월 경기 고양터미널 공사 화재 참사, 2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한 5월 전남 장성요양병원 화재 참사, 16명 사망과 11명 중경상이 발생한 10월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 참사는 결국 ‘부실시공’이 원흉이었다. 세월호 참사도 중고 여객선의 사용연한 규제 완화와 평형수 부족 및 무리한 증축과 고박 부재가 문제가 돼 급격한 변침이 발생해 빚어진 인재였다. ‘인명 구조’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그 후의 문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은 산업현장의 안전 문제가 곧 시민안전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따라서 안전은 무엇보다 예방이 먼저이지 사후 수습이 우선은 아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재난안전 사령탑인 장관급 국민안전처와 공무원 연금과 인사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될 인사혁신처가 19일 출범했다.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출범식에 참석한 정홍원 국무총리(오른쪽 두번째),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오른쪽), 이성호 국민안전처차장(오른쪽 세번째) 등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전국의 산업현장에서만도 매년 2500명의 노동자들이 안전사고로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행정직 공무원들만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 대부분의 국민들 생계가 달린 사업장 안전은 곧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다. 그럼에도 ‘산재사망사업주처벌강화특별법’은 아직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그리고 기업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도 80%가 시정조치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화학물질관리법 보고 사항 대폭 축소, 위험한 아파트 수직증축 허용, 안전심사 민간 위탁 확대, 선령·철도·지하철 내구연한 완화 등등 수많은 규제 완화 정책들은 착착 진행 중이다.

정부는 내년도 안전 예산을 무려 14조6000억원 책정했다고 한다. 이 예산이 순수 ‘안전’에 투자되는 게 아니라 기업을 위한 ‘안전 산업’에 투자되는 꼼수를 막아야 한다. 안전은 기업의 이익과 양립하기 어렵다.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안전 예산 집행,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이다.

무려 1만명이나 되는 거대 정부조직 ‘국민안전처’가 신설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산업재해와 국민적 재난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될 듯싶어 심히 우려가 된다. 그리고 ‘빨리빨리’ 결과주의, 성과주의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안전한 것이 가장 빠른 것이다”로 국민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안전제일’ 구호만 요란한 캠페인이 돼서는 안된다.


박종국 |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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