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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팔고 떠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의 금융·세금 규제로 피해를 봤다”며 국제중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상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의거해 한국 정부를 국제법정에 세우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와 론스타가 향후 협상에 실패할 경우 자유무역협정(FTA)의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지적돼온 ISD가 현실화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론스타 논란 (경향신문DB)



론스타가 그제 보도자료를 통해 주장한 ‘피해’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2006년 KB금융지주, 2007~2008년 HSBC에 각각 외환은행 주식을 매각하려 했으나 한국 금융당국이 매각 승인을 늦추는 바람에 주식을 제값에 팔지 못해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 첫째다. 론스타는 또 지난 2월 하나금융에 외환은행 주식을 팔아 4조7000억원의 매각 차익을 얻은 데 대해 국세청이 3900억원의 양도소득세를 원천징수한 것을 ‘자의적이고 부당한 과세’라고 주장했다. 천문학적 이익을 챙기고도 세금 한 푼 못 내겠다는 투기자본의 ‘탐욕’을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모든 것이 적법하고 비차별적으로 처리됐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정부가 국제소송에 대비해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니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치밀하게 대응하기 바란다.


론스타가 제기한 본안 외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돌아봐야 할 대목이 있다. 론스타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유죄판결에다 ‘먹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막대한 투자이익을 챙겨 떠났다. 그럼에도 피해를 보상하고 세금 돌려달라며 한국 정부를 국제법정에 세우겠다고 나선 것은 ‘적반하장’ 격이다. 하지만 정부가 그동안 론스타에 베푼 특혜적 조치들을 상기하면 론스타의 이런 자세는 상당 부분 자초한 측면이 있다. 2003년 예외조항을 적용해 외환은행을 넘겨주고, 이후 계속된 자격 논란에도 불구하고 론스타에 대한 산업자본 판정을 미루고, 결국에는 실효성 없는 주식처분명령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한국 정부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투명하고 공정한 법 집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례다.


이번 사태는 FTA, 특히 한·미 FTA에서 ISD를 폐기해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주체였던 자회사(LSF-KEB)가 벨기에 소재 법인인 점을 들어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상의 ISD 조항을 들고나왔다. 정부가 “론스타의 문제제기는 FTA에 따른 ISD와는 무관하다”고 밝히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가 깨달아야 할 점은 ISD의 위험성이다. 론스타는 외국인 투자자가 국가의 조세주권을 문제삼을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 또 미국에 소재한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가 벨기에 자회사를 통한 ‘간접투자’였음을 내세워 한·미 FTA의 ISD를 들고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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