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들 틈에 사는 것 같아요.”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그는 요즘 지인을 만날 때마다 덜컥 겁부터 난단다. 과거에 멀쩡했던 사람들이 ‘조국’에 관해 뭔가 부정적인 얘기라도 하면 대화 중 갑자기 괴물로 돌변해 공격해오는 일을 몇 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좀 전까지 다정히 대화를 나누던 친구나 동료가 바로 눈앞에서 좀비로 돌변하는 상황. 이게 어디 그만의 일이겠는가? 요즘 그와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게다. 요즘 이 사회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 이야기가 ‘조국’과 그의 가족에 이르면 성한 정신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가끔 제정신 가진 이를 만나면, 마치 영화 속에서 좀비에 쫓기던 주인공이 용케 살아남은 다른 인간 생존자들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그 반가움은 거의 생물학적인 것이어서, 호모..
세밑, 보건복지부가 1주일 사이에 3개의 문자로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본인부담금 인상을 통보했다. 본인부담금은 현재 가구 소득 기준으로 산정해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데, 문자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인상 금액은 최소 2700원에서 6만원으로 1차 문자로 통보받은 액수보다 2차에는 2~3배 인상된 금액이 안내된다. 3차에는 다시 인하된 금액이 문자로 통보된다. 한 장애인의 경우 1차 약 3만원, 2차 약 6만원, 3차 약 1만원으로 2차례 정정 통보 문자를 받았다. 이미 기존 금액으로 납부한 이들은 꼭 인상액을 추가로 내라는 통보도 잊지 않았다. 뭐가 정확한 정보인지, 지금도 본인부담금이 부담스러운데 매해 인상되는 기준은 뭔지 통보받은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은 답답하고 분노한다.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는 농성..
1980년 5월21일 오전 광주. 전남도청이 위치한 금남로를 비롯해 광주 전체는 슬픔과 아픔, 분노로 뒤섞였다. 인구 70여만명 중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금남로에 모였다. 오후 1시 무렵 군이 국민을 향해 발포했다. 시민들은 쓰러진 사람들을 병원으로 옮기며 총을 들었다.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철수하자 헌혈하고 주먹밥을 만들었다.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다친 사람들을 돌봤다. 그렇게 광주는 상처받은 공동체를 치유해갔다. 5월27일 군의 무력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역사’ 속으로 걸어간 사람들은 망월의 품에 안겼다. 그 뒤 사람들은 국가에 의해 망월동으로 가는 길이 막히면 산을 넘어 찾아가고 부정한 정권에 대항했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세월의 무게만큼 많은 조사가 이뤄졌으나 수많은 문제가 산더미..
지난 10여년간 한국인들의 삶을 가장 크게 바꾼 제도는 주 40시간제일 것이다. 이 법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여가다운 여가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허용되었다. 그런데 이 법은 그 취지가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에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이유로 기존 임금을 삭감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법에 포함되었다. 실무 단계에서는 법 개정의 취지가 명백한데 굳이 이 조항이 필요한가라는 논쟁도 있었다. 하지만 노동계의 우려가 컸기 때문에 아예 해석의 여지를 두지 말자는 의견이 우세했다.그러나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법이라는 것은 그 법의 시행을 통해 벌어질 상황을 일일이 조문에 담을 수 없다. 구체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결국 판례를 통해 법의 의미가 확립된다. 그래서 구체적 상..
고교에 강연을 가면 ‘용기를 얻었다’는 메모를 전하는 학생들을 만난다. 하루는 내용이 상세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맹목적 찬반토론에 집착하는 학교의 사회과목과 달리 ‘무엇이 틀렸다’는 비판을 확실히 해 줘 고마웠다, 교사들의 기계적 중립성이 답답했는데 좋은 사회를 위해 나쁜 선택을 하지 않는 법을 알려줘 좋았다 등. 하지만 같은 내용을 학부모 연수에서 언급하면 항의가 빗발친다. 정치적 선동 그만해라, 특정 정당 떠올리게 하는 발언 삼가라 등. 빨간 띠 두르고 혁명에 동참하라고 강요했다면 모르겠는데, 양극화를 방관하는 일상의 씨앗을 찾고 편견을 깨자는 내용을 문제 삼는다. 나도 따진다. “왜 저한테만 정치적이라고 하세요?”본질, 순수 등의 고상한 단어로 교육을 포장하는 사람들은 기득권을 비판하는 내용에만 ..
추미애가 법무부 장관이 되던 날 이종걸은 이런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형조판서가 입조했다. 의금부도사·포도대장은 이제 상급자를 모시게 되었으니 조정 대사에는 관심을 끄고 즙포(緝捕) 같은 원래 직분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챙겨야 할 것은 포승줄이지 오지랖이 아니다. 꼭 할 말이 있으면, 형조판서를 통해서 진언하거나, 상소를 올리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이 트윗 첨부 사진에 윤석열이 등장한 것으로 봐서 그를 겨냥한 경고로 보인다. 법무부 소속 외청인 검찰 기관장과 소속 검사들이 장관 지휘를 잘 받고, 죄인도 잘 잡으라는 취지의 말은 시비걸 게 아니다.자손이어서가 아니라, 아나키스트 이회영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이가 왜 조선시대 통치기구와 직제를 끌어들여 비유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형조는 노비문서를..
민정아 하셨다.네 하였다.보리다 하셨다.네 하였다.고양이다 하셨다.네 하였다. 어쩔 수 없는 건어쩔 수 없는 거다.겪은 것들을 좀 생각해라. 시간 나면 여 와서며칠 있다 가거라.아무 생각 안 나는 시간이필요하다. 즐거운 일을 네가 다 한다.숨 쉬어가면서.뭐 드러 급하게 하냐.한 박자 늦춰가면서. 봄이니까.꽃피잖아.바람도 불고.새도 울어. 김민정(1976~)‘곡두’의 뜻은 환영(幻影)과 같다. 실제로는 없는 사람이나 물건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곡두인생’이라는 말도 있으니 영속되지 않는 허망한 삶을 그렇게 일렀다. 모든 작위(作爲)가 있는 것은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이슬과도 같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곡두이므로, 그런 연유로 우리의 사랑은 보다 깊어지고, 애틋..
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광고 하나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반려견 ‘테리’(래브라도 레트리버)가 주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테리는 침대에 웅크리고 있다가 어린 시절 공을 입에 문 채 ‘형’과 함께 찍은 사진을 쳐다본다. 뭔가 결심한 듯, 공을 물고 집을 나선다. 완전자율주행 전기자동차가 집 앞에서 테리를 기다린다. “헬로 테리!” 뒷좌석에 오른 테리는 어린 시절 형과 함께했던 기분 좋은 꿈을 꾼다. 알아서 달린 자동차는 늦은 밤 어느 주택가에 선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훌쩍 커버린 사진 속 형이 테리를 반긴다.자율주행시대가 가져올 우리의 미래다. 정부가 5일 부분자율주행차(레벨3) 안전기준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7월부터 레벨3 자율주행차의 출시·판매가 가능해져, 실제 도로주행이 시작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