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하는 일 중 하나가 선거나 국민투표, 정당과 관련된 법령의 개정 의견 제출이다. 선거관리와 정당에 관한 사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제5 헌법기관이 내부 논의를 거듭해 내는 의견이라 정치권도 이를 존중한다. 실제로 정치권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선관위가 제안해 빛을 보게 한 제도가 한둘이 아니다. 정치신인의 선거운동을 허용한 예비후보등록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선관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실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부터였다. 지역감정 선거를 완화하고 표의 비례성·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를 눈여겨본 것이다. 의석 분배 방식이 워낙 다양하고 계산이 복잡해 처음에는 이해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연구를 거듭할수록 선관위는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확신하게 된다..
대법원 2부가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인사 보복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한 원심판결을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안 전 검사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2015년 여주지청에 근무하던 서 검사를 같은 부치지청(차장검사가 없는 소규모 지청)인 통영지청으로 전보시키는 인사안을 인사담당 신모 검사에게 작성토록 한 것이 직권남용죄에 해당된다는 하급심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시킨 때 성립한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인사권자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했다. 인사권자가 법령의 제한을 벗어나지 않는 한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결정하는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했다. 서 검사에 대한 인사는 검사인사원칙을 위반한 부당한 인사라는 하급심 판단은 ..
“스웨덴의 안정과 발전의 밑거름이 된 ‘목요클럽’ 같은 대화모델을 살려 정당과 각계각층 대표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겠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7일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한 말이다.목요클럽의 공식 명칭은 ‘수출과 생산 증대를 위한 협력기구’다. 1946년부터 23년 동안 스웨덴을 이끈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가 시작했다. 한국처럼 대기업 중심 수출 위주 경제인 스웨덴에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가 있었다. 에를란데르는 총리로서 각종 기념행사, 포럼, 회의 등에서 여러 단체의 대표를 만났지만 그때뿐이었다. 1년에 한두 차례 기업 총수와 노동조합 대표를 만나는 공식 모임은 대부분 성과 없이 끝났다. 단체마다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정책을 요구할 때가 많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권을 흔들어 좌초시..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로 노동자 855명이 숨졌다고 집계됐다. 2018년 971명에서 116명(11.9%) 줄어든 것이다. 노동자 1만명당 사고사망자를 뜻하는 사망만인율도 1년 새 0.51에서 0.45~0.46으로 하락했다. 1999년 1456명으로 잡힌 정부의 산재사망 통계가 시작된 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사고사망자가 800명대로, 사망만인율이 0.5 이하로 떨어진 것도 처음이다. 사망사고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현장에서 11.8% 줄고, 공공사업장 감소율은 30%에 달했다. 흔히 ‘죽음의 행렬’로 표현되고 ‘OECD 1위’ 멍에를 쓰고 있는 산재 궤적에 큰 변곡점을 찍었다고 볼 만하다.산재 사망자 격감은 민관의 경각심과 정책집중력이 어우러진 성과물일 수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안전 비계(작업 발판) 보급..
작은 놋그릇을 살짝 친 듯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 아이들은 이 소리에 귀를 쫑긋하고 학교를 찾아와 배우고 또 배웠으리라. 흰 지팡이가 땅의 감각을 알려주었다면 작은 벨소리는 공기를 통해 방향도 일러주고 안전하게 찻길도 건너게 해주었을 것이다.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소리는 빛과 같다. 9일 이른 아침에도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자리한 국립 서울맹학교 정문에서는 벨소리가 작게 울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리는 소리는 모르고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작았다. 주변인들을 배려한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의 크기였다. 서울맹학교 관계자는 “마침 오늘 겨울방학식과 졸업식이 열린다”고 말했다. 참 다행이다.서울맹학교에서 500m가량 떨어진 청와대 사랑채 부근에서는 80일 넘게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에..
‘상식의 사회.’ 새해의 바람이다. 현실이 강고하다고 상식을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이 현실에 구현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016년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광장의 시민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이어야 할 이 말을 목이 쉬도록 외쳤다. 그렇게 정권교체를 이루었어도, 헌법 제1조의 상식과 현실의 괴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은 65%의 득표로 80%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지만,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28%의 득표에도 15% 미만의 의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국민은 주권자로 행사한 권력의 15% 정도를 빼앗긴 셈이다. 이러한 상식 밖의 정치 현실을 뜯어고치자는 연..
“떡국을 끓여 놓고.” 약 100년 전인 1926년 2월, 세 차례에 걸친 동아일보의 설 기획 제목이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새해 떡국을 끓여놓고도 온 가족이 모이지 못할 사정이 늘고 있었다. 땅 없는 농민과 빈민이 고향을 등지고 팔도의 도시로 흩어졌다. 일본, 만주, 중국, 러시아로, 더 멀게는 하와이, 캘리포니아, 유카탄반도, 쿠바 등지로도 흩어졌다. 극소수 조선인 부자의 여행이나 유학을 빼고는 다 살자고 발버둥치다가 생긴 이산이었다. 식민지 특유의 이산도 있었다. 일제에 맞선 이들의 옥살이가 낳은 이산이 그것이다.옥살이 이산의 첫 예는 양근환(梁槿煥, 1894~1950)의 가족이다.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김익상, 임시정부의 맹장 조완구 가족의 사연이 그 뒤를 잇는다. 양근환은 1921년 일제 부역..
대학생이던 15년 전, 국회에서 진행한 공모전에서 ‘육아수당’ 지급과 ‘산모카드’ 발급을 제안해 ‘기발하다’는 이유로 우수상을 받았다. 사실 그때는 몰랐다. 육아가 무엇인지.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여섯 살 아이와 함께하니 이제는 조금 알겠다. 육아가 무엇인지.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가 마흔 살의 어느 날 ‘육아휴직’을 하고, ‘육아일기’까지 쓰게 되었다. 2020년에는 ‘아빠 육아휴직’의 적극적 지원을 기대한다.통계청이 발표한 ‘2019 일·가정 양립 지표’에 따르면 2018년 육아휴직자 수는 9만9199명이며 그중 남자(아빠)는 1만7662명으로 전년 대비 46.7% 증가했다. 육아휴직 사용률은 4.7%, 남자(아빠)는 1.2%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빠 육아휴직자의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