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13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검찰과 경찰은 기존의 ‘수직적 관계’에서 ‘상호협력 관계’로 바뀌게 된다. 수사의 시작·종결은 경찰이, 기소 및 공소유지는 검찰이 하는 것으로 권한과 책임이 분산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1호 국정과제인 검찰개혁 입법도 완료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과 함께 검찰을 견제할 민주적 통제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검찰 수사지휘권 폐지는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66년 만이다. 검찰의 수사·기소·영장 청구 독점권이 무너진 것은 1962년 개헌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시도했지만 검찰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수사권 조정 정부안이 확정됐고,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담..
우리 주변에는 잘못 알려진 ‘상식’이 많다. 고려 말기의 학자 문익점이 서장관으로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목화씨 몇 알을 몰래 ‘붓뚜껑’에 숨겨 들어와 목화 보급에 힘썼다는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믿을 만한 옛 문헌에 그런 얘기가 실려 있어야 한다. 또 중국 문헌에서는 ‘원나라가 목화씨 반출을 엄격히 막았다’는 내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런 얘기는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2010년 백제 위덕왕 때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남 부여군 능산리 절 유적에서 면직물이 발견됨에 따라 문익점이 ‘최초 목화 보급자’라는 사실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아무튼 문익점은 목화씨를 ‘붓뚜껑’에 숨겨 오지 않았다. 우선 ‘붓뚜껑’이라는 말이 없고, 숨겨 들여올 필요도 없었기 ..
어제 한국에서 태어난 아기는 대략 800명이다. 이 중 몇이나 2120년까지 살아 있을까? 무려 400명 이상이란다. 단, 기후 재앙이나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150년 전쯤의 인류 평균수명은 고작 30세였다. 각종 전염병으로 인한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최근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수명은 대략 38세다. 그러니 인류의 수명이 이렇게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은 백신을 비롯한 의료와 보건의 비약적 발전 덕분이다. 현재 한국인은 83세 정도는 산다. ‘100세 시대’가 더 이상 꿈은 아니다.하지만 100세 인생의 도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80까지도 지겨운데(사실 외로운데) 100세까지 살아서 뭐하나, 100세를 살면 80세까지는 일해야 먹고살 텐데 힘들어서..
법률관계란 ‘권리와 의무’의 관계다. 법률관계인 고용에 있어 권리와 의무는 한 쌍을 이룬다. 임금을 정하고 인사권과 징계권을 가지는 사용자는 권리의 이면에 사용자로서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다. 정당한 임금을 지급할 의무, 산업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법원은 “고용 또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 보호의무”를 위반한 사용자에게 배상책임을 부과해왔다. 현대사회에서 ‘권리만 있는 사용자’와 ‘의무만 있는 근로자’를 상정할 수 있을까. 이런 관계는 ‘전근대적’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그런데 한국마사회와 기수의 관계에서 마사회는 오로지 권한만 있고 아무런 의무가 없다. ‘한국마사회법’부터가 그렇다. 기수 면허의 발급 요건을 정하는 일,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할 권한은 마사회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법 제14..
요즘 복고풍을 뜻하는 레트로가 유행이라더니 졸업식도 레트로인가? 얼마 전 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경험한 눈물의 졸업식이었다. 졸업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호명되고 교장선생님에게서 졸업장을 받고나서 담임선생님에게 안기거나 절하며 많은 아이들이 눈물을 지었다. 그걸 지켜보는 학부모님과 선생님들 눈시울도 덩달아 붉어지는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특히 선생님과 부모님 속을 많이 썩이던 아이들이 더 많이 울었다. “그렇게 울 거면 그때 말 좀 잘 듣지”라고 옆에서 볼멘소리 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그래서 애들이고, 그래서 선생과 부모 자리가 필요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증명했다.‘교실 붕괴’니 ‘공교육의 위기’ 같은 이런 말들이 일상화되는 속에서 그동안 눈물 한 방울 없는 짧고 형식적인 졸업식을 봐오다 ‘..
쥐똥나무를 처음 본 건 청와대 뒤 북악산에서였다. 군인들이 지키는 울타리의 한 축을 담당하며 숙연하게 서 있는 나무. 머리를 바싹 깎은 이등병의 군기가 느껴졌다. 벽돌처럼 오와 열을 맞춘 촘촘한 잎들 사이로 정말 쥐의 똥 같은 까만 열매가 몇 개 숨어 있어 제 이름의 연유를 짐작하게 했다. 한번 들으면 쉬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이었다. 인왕산은 퍽 자주 가는 산이다. 어느 해 여름 땀을 잔뜩 흘리고 출렁출렁 내려왔을 때 국궁터인 황학정의 뒷덜미쯤에서 그 나무를 만났다. 한때 호랑이를 키울 만큼 깊고 무성했으나 이제는 조금 떨떠름해진 인왕산의 녹음. 그래도 잘 단장된 숲에서 마구 뻗어나가지 않고 숨어서 웅크린 채 영리하게 세상을 관조한다는 느낌의 나무. 쥐똥나무는 그런 인상을 내게 심어주었다.시절이 ..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는 프로야구 구단의 비시즌 풍경을 다룬 작품이다. 1~2회에서 스타 선수 임동규와 신임 단장 백승수의 기싸움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프랜차이즈 스타 임동규는 자신의 실력과 인기, 입지를 과신해 분란을 일으키다가 백 단장 손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는 운명에 처한다. 임동규처럼 ‘인성 논란’에 휩싸일 법한 프로야구 선수가 현실에도 있을까. 안타깝게도 있다.프로야구계에선 새해 벽두부터 폭행 사건이 잇따랐다. NC 2군 코치 ㄱ씨는 신고를 받고 자택으로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됐다. ㄱ코치의 부인이 ㄱ코치가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앞서 LG 현역 선수 ㄴ씨는 여자친구와 다투다가 이를 말리던 시민..
피츠제럴드의 소설 는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아메리칸드림의 빛과 그늘을 보여준다. 소설은 순수한 사랑을 좇다가 파멸에 이르는 개츠비의 일생을 통해 물질주의에 빠진 미국 사회를 고발한다. 영화로 만들어져 더 유명해진 소설은 지금까지 수천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청소년 필독서로 꼽힌다. 개츠비의 이름을 딴 남성화장품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개츠비스크(gatsbyesque·개츠비처럼 순수한 이상을 추구하는 성향)’가 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라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소설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개츠비가 바다가 보이는 뉴욕의 대저택에서 날마다 호화파티를 여는 장면이다. 돈으로 빼앗긴 연인(데이지)을 되찾는 방법은 돈뿐이라는 믿음을 가진 개츠비는 끝내 파티를 통해 연인을 만난다. 대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