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말이 말을 낳는다”는 속담이 있다. 교통수단과 정보매체가 제한되었던 때에도 어떤 특정한 정보나 뉴스가 빨리 전달되고 확산하는 모습을 잘 묘사했다. 특히 격변과 혼란의 시기에 백성들은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메시지를 비밀리에 주고받았다. 집권자들은 이를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트리는 행위라며 추적하고 탄압했지만 정상적인 언로(言路)가 막힌 상황에서 정보나 소문은 빠르게 여러 샛길을 만들며 제 갈 길을 찾기 마련이었다. 다양한 정보매체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늘날에도 이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언로가 막혀서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많은 언로로 인한 혼란이 문제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누구나 자신의 정보나 의견을 전달..
지난 1월3일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부대 사령관을 사망케 한 미군 드론 공격으로 새로운 중동전 위험성이 우려된다. 이란은 그의 죽음을 순교로 애도하며 즉각적으로 대미 보복에 나섰다. 지난 8일 이란군은 이라크 내 미군기지 두 곳을 미사일로 타격했다. 그리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미 대사관을 포함해 각국 공관이 소재한 바그다드 그린존을 타깃으로 삼아 또다시 로켓공격을 감행했다. 이란이 보복반격을 해올 경우 ‘불균형적’ 방식으로 군사공격에 나설 것임을 천명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강력한 경고가 무색해졌다. 더욱이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 2곳에 대한 미사일 공격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군사적 보복이 아닌 추가 경제제재 카드를 내민 후에 일어난 이란군의 그린존 로켓공격은 트럼프의 입장을 곤혹스..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즈음이면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윤극영님의 동요 ‘설날’에 나오는 ‘까치설날’의 의미다.설을 주제로 한 그림에 까치가 자주 등장하고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설도 있다 보니, ‘까치설날’을 진짜 까치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까치설날’은 윤극영님의 동요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던 말이다.이와 달리 예부터 ‘아치설’ 또는 ‘아찬설’은 있었다. ‘아치’와 ‘아찬’은 ‘작은(小)’을 뜻하고, 이것의 경기도 사투리가 ‘까치’다. 즉 음력 정월 초하루가 ‘큰설’이고 그 전날인 섣달그믐이 ‘아치설(작은설)’인데, 윤극영님의 동요에서 ‘아치설날’이 ‘까치설날’로 바뀌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까치설날’을 “..
최근 주진모씨가 휴대폰에 저장된 정보를 범죄집단에 빼앗긴 뒤 협박을 당했다고 한다. 며칠 뒤 그가 지인과 주고받은 문자와 사진이 온라인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협박의 피해자는 다수인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그중 유명 셰프의 이름도 알려졌다. 피해자들의 휴대폰에 저장된 정보들이 휴대폰 제조사의 클라우드에 연동되어 있었는데, 범죄집단이 비밀번호를 알아내 탈취해 갔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사용하는 다른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알아내 입력해 보았거나, 무작위적으로 각종 번호를 입력해 보는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범죄집단은 주진모씨가 협박에 응하지 않자, 탈취한 정보를 지인과 언론에 유포하고, 그래도 응하지 않자 온라인에 유포했다. 디지털 세상의 명암을 보여준 이런 협박이 가능한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인..
대학 저학년 때 종종 ‘비권 총학생회’라는 말을 들었다. 비권은 비운동권의 줄임말이다. 자신은 운동권이 아니니, 정치판과 연결 없는 ‘순수한’ 후보자라는 말이었다. 정치와 순수하다는 형용사가 대치되는 말이었던가, 고민했지만 이런 의문에 속 시원히 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최근 정치판이란 단어를 다시 들었다. “고3 교실까지 선거판으로 만들고 정치판화해야 되겠습니까”라는 질문에서다. 얼마 전 통과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한 자유한국당 의원이 다그치며 뱉은 질문이다. 이 개정안이 담고 있는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의 내용에 대한 반응이었다. 국회의원은 이 정치체제의 꽃이라는 선거를 통해 직업과 명예, 지위를 얻은 사람이다. 정치판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다른 공간을 선거판, 정치판으로 만들지 말라고 다그..
발명왕 에디슨이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2400번의 기회는 있다”고.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때 2400번의 도전 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숱하게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회복 탄력성’이라고 부른다. 현장에서 상담 일을 하다 보면 회복 탄력성이 낮은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데 한 번만 실수해도 금방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의 회복 탄력성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강하다. 그런데 약하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약해 보인다. 아이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려면 부모부터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귀한 자식일수록 천하게 키워라’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아이들도 강하게 키우려면 비바람이 필요하다.요즘 우리..
3년 전, 아사히신문 기자였다가 정년을 포기하고 50세에 퇴사한 이나가키 에미코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그의 산문집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된 직후였다. 50대 비혼 여성이 사표를 던지고 나서 삶은 오히려 더 풍요로워졌다니 어쩐지 ‘의문의 1패’를 당한 것 같은 기분으로 청한 인터뷰였다.그는 회사라는 ‘키높이 신발’을 벗어던진 후 집도 줄이고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미니멀리즘으로 살아보니 진짜 ‘행복’을 느낀다고 했었다. 당시 그의 속내를 옮기며 ‘나라면’이라는 감정 이입까지 하면서 꽤 여운이 남았다. 그렇다 해도 냉장고도 밥솥도 없이 살기는 쉽지 않으니 나만의 작은 노력을 하기로 했다. 옷가지며 집 안에 쌓여 있던 잡동사니들을 내다버리는 일부터 실행에 옮겼다. 지..
지난 9일 대법원은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서지현 검사가 2018년 1월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과 인사 보복 의혹을 폭로한 지 2년 만에 나온 판단이다.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재판장 박상옥, 관여 대법관 안철상·김상환)의 판결문을 읽어봤다. 놀랍게도 ‘성추행’ ‘강제추행’ ‘성폭력’ ‘성범죄’ 같은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한국에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의 본격 시발점이 된 이 사건에 대해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안 전 검사장이 서 검사를 성추행한 사실을 덮기 위해 인사 보복을 했다는 게 핵심이다. 검찰은 성추행 혐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