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4일 종영한 tvN 드라마 은 먼 옛날 권력암투가 도사리는 지엄한 궁궐에서, 어머니가 모진 바람과 비를 막아주는 우산처럼 자식을 지키고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임금을 사이에 두고 대비(김해숙)와 중전(김혜수)의 대립을 중심으로 극이 펼쳐진다. 이 드라마에는 다양한 모자 관계가 나온다. 임금의 어머니 대비, 세자와 왕자들의 어머니 중전과 여러 후궁들, 독살당한 태인 세자의 어머니 폐비 윤씨까지. 아들을 세자로 만들기 위해 왕실교육에 뛰어드는 엄마들의 치맛바람 속에서, 궁궐은 이들의 사랑과 집념, 욕망으로 넘쳐난다. 그중 대비는 아들을 수단으로 자신의 야망을 추구하는 데 독보적이다. 그녀는 자신의 자식을 왕으로 앉히기 위해 중전의 소생인 세자를 독살한다. 아들이 왕이 되고 나서도 끊임없이 조종하고 지배하..
밀린 숙제를 처리하듯 이제야 연금개혁 논의가 바쁘게 돌아간다. 국회 연금특위에 설치된 자문위원회가 매주 열리고, 보건복지부는 제5차 재정계산 위원회들을 모두 가동하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연금학회 등 전문기관에서도 실제 논점을 가지고 연이어 토론을 벌인다. 여러 자리에 참여하다 보니 이번에는 의미 있는 연금개혁이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도 생긴다. 평행선을 달리던 예전과 달리, 연금개혁 방향에서 일정한 흐름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선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짝으로 다루어진다. 이미 운영되는 두 제도를 함께 개혁하는 건 당연하다 여기겠지만, 지난 4차 재정계산까지도 노후소득보장 강화는 ‘국민연금’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했고, 두 연금을 동시에 바꿀 경우 정치적 부담도 작용했다. 문재..
주변에 지인이 넘치고, 사업이나 뭐나 무난한 이를 보면 백퍼 ‘끌리는 사람’. 이건 연마한 재능이라기보단 성품과 아우라야. “인생에서 배울 점-. 잘해주고 욕먹는다. 깨진 관계는 수선이 어렵다. 친구라도 치부를 보이지 마라. 죽을지언정 남에게 의지하지 마라. 헤프게 웃지 마라, 실성해 보인다. 피식하면 울지 마라, 병들어 보인다. 베풀 때만이 행복이 찾아온다. 길을 잃으면 일단 잠을 자라. 마음이 끌리면 진심이다. 끌리는 사람이 세상을 구한다.”(한 카운슬러의 일기장) 심쿵 끌리는 사람에겐 암만 도리질을 쳐봐도 쑥쑥 빨려들어. 연말에 약속들이 많은데, 올해 지나기 전에 보잔 말. 역병으로도 막을 수 없는 스킨십. 그러고 보면 수년째 연락이 끊긴 이도 있다. 더는 끌리지 않은 사이란 깨진 사이지. 끌리는 ..
에피소드 하나. 사회생활에 치여서 신혼여행 말고는 아내와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지 못했다고 생각한 남편이 은퇴한 뒤에 아내에게 패키지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우리가 그 정도 사이는 아니지.” 부부 중 한 명은 사회생활에, 한 명은 가정에 집중하면서 ‘부부적 거리 두기’를 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에피소드 둘. 유럽은 호텔 객실에 트윈 베드가 있는 방이 적은 편이다. 얼마 전 동유럽 여행 때도 트윈 베드 방이 좀 부족했다. 그래서 일부는 더블침대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 부부를 주로 더블 침대 방에 배정했다. 그때 한 부부가 동시에 항의했다. “아니 부부라고 더블침대를 쓰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 부부는 진심으로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에피소드 셋. 여행에 와..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의회가 개입해 예정된 철도파업을 무산시킨 뉴스가 주목받았다. 지난달 24일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과 여러모로 비교되기 때문이다. 미 정치권의 철도파업 무산 조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바이든이 의회에 개입을 요청한 때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이다. 그로부터 사흘 만에 하원과 상원은 철도노사 잠정합의안 강제법안을 처리했고, 바이든은 이튿날인 지난 2일 서명했다. 요청에서 서명까지 나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 닷새 만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지만 파업 사태는 보름이 되도록 해결 기미가 없다. 너무나 대조적이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철도파업을 원천봉쇄한 근거는 100년이 다 돼가는 철도노동법이다. 이 법은 철도 및 항공 분규 해결을 위해 1926년에 ..
한 해를 정리하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자꾸만 지난 일 년을 돌아보게 되는 나날. 연말에 함께 읽고 싶은 소설이자 올해 읽은 가장 아름다운 소설 중 하나로 현호정의 ‘한 방울의 내가’(‘릿터’ 2022, 10/11월호)를 소개하고 싶다.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있는가 하면 자꾸만 의문을 품고 다르게 살아보려는 존재도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물방울도 그렇다. 자고로 물이라면 강, 바다, 비, 눈, 수증기, 얼음으로 끊임없이 순환해야 하는 법. 지구 어디에선가 발생해, 더 커다란 물과 합쳐지거나 더 작은 물로 나뉘며, 기화되거나 액화되면서 형태를 바꾸고, 거듭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 물의 운명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그 운명을 거슬러 강물도 바다도 비도 눈도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한 여자를..
교육기본법에 새로운 정의 조항을 만들어 학생을 ‘학령기 국민’으로 정의하길 소망한다. 상식적으로 학생은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을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학교 밖 청소년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한다. 학교 밖 청소년은 학교를 진학하지 않은 대안학교나 홈스쿨의 청소년과 학교를 다니다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교육부와 시·도교육감이 관리하고 교육예산을 사용하는 반면 학교 밖 청소년은 여성가족부가 담당하고 지자체가 관리하며 교육예산이 아닌 지자체 예산이나 여성가족부의 예산을 사용한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예산이 부족하다. 통계 비교가 가능한 2019년을 기준으로 학생과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예산지원의 차이를 살펴보자. 교육부의 교육기본..
인류는 화석연료와 자본주의를 통해 지구 생태계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모자라 스스로의 생존마저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인류는 석탄과 석유를 먹고, 시멘트 건물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생태계의 일원이기 때문에 생물다양성이 붕괴된 지구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곧잘 잊는다. 지구생명보고서를 보면 지난 50년간 지구상 생물종 개체수는 평균 69% 감소했다. 종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생물다양성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은 서식지의 손실과 훼손이다. 하지만 앞으로 생물다양성에 닥쳐올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기후위기다. 서식지의 손실로 인해 생태계의 회복력이 크게 상실된 상황에서 폭염, 화재, 가뭄, 홍수 등 극한 기후 현상으로 인한 충격은 생물다양성의 붕괴를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