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엔 다양한 경향이 존재했다. 실추된 보수의 명예를 고민하는 사람들에서부터 자본주의 극복을 꿈꾸는 사람들까지. 그러나 가장 주요한 경향은 역시 그 중간쯤에 있는 사람들, 국가의 정상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국가의 정상화는 흔히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되새기는 일로 표현되곤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많은 사람들을 가슴 뛰게 하지만 사실 헌법 제1조는 그 자체로 특별하진 않다. 가령 박정희의 유신헌법 제1조는 이렇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한국 헌법 제1조는 20세기 헌법의 기초라 일컬어지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따른 것이다. ..
오늘 시위가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장면들의 한 주인공은 10대들이다. 그들은 이번 시위에서 최초이자 거의 유일하게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급진적인 성인들도 꺼렸을 단어를 그들은 거리낌없이 내걸었고, 이 싸움이 박근혜 퇴진을 넘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임을 환기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감동할 것 하나를 빠트린 듯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걸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가 가르친 건 이 고약한 자본 체제에서 나만 살아남는 법이었고, 그들의 미래를 위한 최선이라 믿었다. 그런데 혁명이라니, 세상에. 나는 잠시 어쭙잖은 감회에 젖는다. 15년 전 어느 날, 불현듯 나는 한국의 아이들이 전에 없던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발견했다. 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일제히 사라졌다는 것과 함께 늘 이어오던..
역사든 현실이든 음모론이나 궁중비화식 서술은 해악이 있다. 극소수 엘리트 영역을 위주로, 사회적 맥락보다는 개인 심리와 윤리 차원으로 상황을 단순화함으로써 대다수 인민의 구체적인 삶과 상황의 총체성을 소거하기 때문이다. 최순실 사태는 음모론과 궁중비화식 서술에 대한 그런 일반적 판단을 무색하게 한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들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해악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지배계급의 처지에서, 이 사태는 박근혜나 최순실 따위 지극히 비정상적인 인간들의 행태가 될수록 안전하다. 이 순간 거의 모든 사람이 입에 올리는 ‘국정농단’이라는 말은 그와 관련되어 있다. 국정을 농단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가정하여 그 결과가 정반대의 가치로, 친노동자·서민적 정책으로 나타났다면 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1976)을 오랜만에 다시 봤다. 20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 어느 날 이탈리아 농촌 마을에서 각각 소작농과 지주의 자식으로 태어난 올모(제라르 드파르디외)와 알베르토(로버트 드 니로)의 우정과 일생을 그린 영화다. 5시간이 넘는 영화지만 장면들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두 배우가 출연했다는 건 기억했지만 그마저도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저렇게 생겼었구나’ 싶었다. 덕분에 마치 처음 본 영화처럼 영화 속 현실을 오늘 현실에 비추어가며 볼 순 있었다. 영화의 끝 무렵, 1945년 이탈리아는 파시스트에게서 해방되고 지주 알베르토는 소작농들에게 체포되어 둘러싸인다. 올모는 말한다. “우리가 너를 비난하고 과거가 너를 비난하고 있어. 이제 지주는 없어. 지주는 죽은 자야.” 무력한 얼굴..
칸트 이래 철학자들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 즉 인간이 특별한 압력이나 통제 없이도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하고 되도록 인간답게 행동하려는 것에 대한 토론을 거듭해왔다. 근래 과학은 그런 본성이 뇌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이를테면 뇌의 ‘피각’ 부위는 효율성에 반응하며 ‘뇌섬’은 공정성에 반응한다. ‘미상/중격슬하’는 그 둘을 중재하고 균형을 맞추는 부위다. 인간의 뇌는 그 자체로 정교한 도덕 계산기라는 것이다. 연쇄살인범의 뇌는 안와피질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정상 범주의 뇌를 가진 사람도 외상에 의해 관련 부위가 손상되면 도덕적 기능이 변화한다. 인간의 도덕적 기능이 전적으로 뇌에 의해 결정된다면, 모든 인간의 뇌를 검사하여 도덕적 등급을 매기고 관리하는 완결적 형태의 ..
메갈리아에 대한 호오(好惡)를 떠나,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건 이상한 일이다. 메갈리아는 미러링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미러링에서 내용들은 그 자체로 실제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상이다. 미러링은 그 가짜 상을 통해 은폐된 현실을 환기함으로써 사회적 토론을 만들어내는 소통방식이다. 메갈리아는 한국 남성의 성차별적 태도와 행동들을 거울에 비추어 낱낱이 보여줌으로써, 그런 태도와 행동이 얼마나 일상적이며 뿌리 깊은지 환기하려 했다. 오히려 메갈리아는 이른바 제대로 된, 건강한 페미니즘으로 보여선 안 된다. 페미니즘이라고 보기엔 지나쳐 보이는 것, 불편함과 거부감을 주는 것일 때 비로소 미러링의 효과가 생겨난다. 메갈리아의 일부 행태가 페미니즘의 범주를 넘는다는 비판은 싱거운 것이다. 메갈리아 ..
(2015)에서 마이클 무어는 스스로 미국의 전사가 되어 다른 나라들을 침공하기로 한다. 단, 세 가지 규칙이 있다. 누구에게도 총을 쏘지 말 것, 기름을 약탈하지 말 것, 친애하는 미국인들에게 유익한 것을 가지고 돌아올 것. 총을 쏘지 않고 기름을 약탈하지 않는다면, 진지한 의미에서 미국식 침공은 아니다. 결국 침공은 세 번째 규칙을 위해서다. 무어는 미국인에게 유익한 것을 가지고 돌아가기 위해 이탈리아의 휴가, 프랑스의 학교 급식, 독일의 과거사 성찰, 아이슬란드의 양성평등 그리고 핀란드의 교육을 침공한다. 핀란드 침공에서 무어는 묻는다. 예전엔 핀란드 교육이 미국처럼 엉망이었고 학력 수준도 다를 바 없이 바닥이었는데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을까. 무어는 적국 교육부 장관을 찾아간다. 이야기를 꺼내기..
한국한. 뒤집어도 한국한이라 이름을 잊기 어려운 그는, 같은 5학년이지만 세 살 더 많았고 덩치는 고등학생에 이미 골초였다. 한국한은 이따금 발작이라도 하듯 동네 아이 하나를 골라 이유 없이 때리곤 했다. 결국 나도 그 대상이 되었고 맞서려 한 탓에 매를 벌었다. 하필이면 집 앞 골목에서 한참을 맞고 있는데 그가 움찔했다. 골목 어귀에 어머니가 나타난 것이다. 한국한과 나와 구경하던 아이들이 정지화면처럼 굳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코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짓눌려 있는 나를 흘끔 보더니 지나쳐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얼이 빠진 얼굴로 흩어졌다. 동네엔 부잣집이 있었다. 주인이 무슨 공장 사장이랬는데 담이 어른 키를 훌쩍 넘겼고 자가용도 있었다. 그 집에 한 학년 아래 쌍둥이가 살았다. 아이들에게 온갖 못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