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뜨면 경제정책이 논란거리지만, 길게 보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성장률은 25년째 하락 중이다. 그사이에 정권교체도 여러 번 있었고, 경제정책도 수없이 바뀌었다. 그래도 백약이 무효로 25년째 하락 중이다. 그러니 경제정책 가지고 논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 경제가 어렵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지금 정도의 논쟁으로는 답이 안 나올 것이라는 얘기다.우리는 운 좋게도 제조업 시대의 성장모델에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정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머리카락이 쭈뼛해진다. 제1, 제2 금융권과 국민투자기금 등 국내의 가용한 자금이란 자금은 죄다 끌어다 썼고, 대일청구권 자금과 베트남전쟁 참전을 통해 얻은 자원..
“이제 정치 그만둘래.” 알고 지내는 정치인들로부터 가끔 듣게 되는 말이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것으로 들린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를 계속해주었으면 싶은 정치인들 중에서 정치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점점 더 자주 듣게 된다는 점이다. 당장 몇몇 사람들 얼굴이 떠오르는데, 오늘은 자유한국당 이야기를 할 생각이어서 원래 그 당 출신 중에 꼽자면 얼마 전 정계를 은퇴하고 스타트업으로 제2의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한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떠오른다. 나는 그와 정치적 견해를 온전히 같이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가 꽤 괜찮은 정치인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한계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는 정치의 의미와 그 부끄러움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아주 멈춘 적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여야를 막론하고 ..
최근에 나온 흥미로운 논문 두 편을 소개할까 한다. 하나는 2016년 말 ‘시민과 세계’에 실린 신진욱 중앙대 교수의 라는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달 ‘한국사회학’에 실린 이철승 서강대 교수의 라는 논문이다. 신진욱의 논문은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말에 이미 결손민주주의 개념을 통해 사태의 원인과 향후 전망을 발 빠르게 분석해낸 통찰력이 돋보이고, 이철승의 논문은 필자가 평소 ‘386세대의 유통기한 만료 선언’이라고 부르던 현상과 거의 정확하게 같은 문제의식을 정교화한 것이어서 반가웠다. 두 논문을 교차해서 보면 오늘날 한국 정치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준다. “대선불복인가요?” 2013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칼..
몇 해 전 일이다. 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의 사회모델 비교연구를 위해 몇몇 나라를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의료, 연금, 복지 등을 담당하는 관료를 만났다. 프랑스는 GDP 대비 공적사회지출이 30%를 넘어서 OECD 1~2위를 다투고, 우리에 비하면 거의 세 배 가까이 된다. 문제는 프랑스의 재정적자가 30년 넘게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적사회지출 30위권 바깥의 우리 입장에서 보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흥청망청으로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그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재정적자가 너무 쌓이고 있는 것 아닌가요? 반면 복지지출은 과도해 보이는데?” 그가 곤혹스러워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 즉각 답이 돌아왔다. “프랑..
‘홍카콜라’와 ‘알릴레오’. 재미난 대결 구도이다. 두 채널의 특징과 향후 예상되는 정치적 파급력을 비교해보자. 우선 홍준표 전 대표가 유튜브 방송을 기획하고 상당한 정도로 선전해온 것은 괄목상대라 할 만하다. 그는 2011년 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이거 언제 방송되는 거냐”고 물을 정도로 뉴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사람이다. 홍카콜라가 많은 구독자와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홍 전 대표 특유의 입담도 작용했겠지만, 오프라인의 정치현실도 못지않게 중요했다고 봐야 한다. 온라인 공간은 종종 정치적인 균형추의 역할을 한다. 트위터의 정치적 영향력이 극대화되어 있었던 2011년을 전후해서 보수언론은 트위터가 좌파의 소굴이자 확증편향의 근거지라는 공격성 기사를 쏟아냈었다. 그러한 평가..
데드 크로스 논란이 한창이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처음으로 긍정평가보다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사실인데, 다른 한편으로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설 이전에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이후 여론지형은 매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성장담론을 장악해야 한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성장론자들이다. 안보나 성장보다 인권이나 환경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탈물질주의자의 비중이 다른 OECD 국가들에서 보통 절반 가까이 나오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15% 내외에 그친다. 성장에 대한 희망을 공유하지 못하면 지지는 없다. 대선이 끝날 때마다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지에 따라 그들이 중시하는 정책을 분석..
나는 약 2년 전 이 정치시평 칼럼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어떻게 증오가 극우정치를 낳고 있는지를 검토한 바 있다(‘증오로 하나 된 세계’ 경향신문 2017년 1월2일자). 그 칼럼의 제일 끝에는 “1000만 촛불로 열린 광장의 결실이 대선 결과로만 판단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광기의 시대에도 온전히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이성과 관용의 제도화가 그 결실이 되어야 한다”라고 썼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난 2년간 이성과 관용의 제도화는 그다지 진전을 보지 못했고, 한국 사회에서 증오 혹은 혐오는 위험수위를 넘나들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어왔던 몇몇 혐오 사이트에 이어 기어코 폭행사건으로까지 이어진 여혐과 남혐, PC방 알바생이나 폐지 줍는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무차별 살인에 이르기까지 이제 우리..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5·1경기장에 운집한 15만 북한 주민 앞에서 남한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대중연설을 했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3차 남북정상회담은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장 한 달 이상 내리막길을 걷던 지지율은 10% 이상 급반등해서 60%대를 회복했다. 비판자들은 지지율 하락을 가져왔던 경제정책의 실패를 평화 프레임으로 덮으려 한다고 하고, 지지자들은 역시 문 대통령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느 쪽이 맞을까. 여기서 퀴즈 하나. 세대별로 보면, 남북정상회담은 어느 세대의 지지율을 가장 크게 견인했을까? 고령층은 반공보수가 주된 이념이고 평화 프레임은 젊은층에 잘 먹힐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답에서 멀어지고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