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폐기’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지난 12월14일 경북 울진에서 신한울 1호기 준공식이 열렸다. 한국 토종 원전이라는 신한울 1호기에 친원전 진영에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즈음 떠오르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나름 가지고 있는 답을 적어본다. 첫째,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 확대가 필요한가? 원전이 탄소 배출이 상당히 적은 발전원인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은 비용과 시간의 문제다. 원전은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에 비해 더 이상 저렴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신한울 1호기는 착공부터 가동까지 12년이 걸렸고 앞으로 원전이 더 지어진다면 역시 10년 이상 걸릴 것이다. 그러나 기후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 티핑포인트를 막을 수 있는 ‘탄소예산’은 채 10년 분량도..
벌써 12월이다. 한 해의 정리와 연말결산을 하는 달이니 나도 첫 원고를 쓰던 때로 돌아가 ‘원고결산’을 해본다. 이 지면에 처음 실린 글은 최소 3년은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금연에 성공하려면 소문부터 내라는 조언을 적용해 누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아도 마구 소문을 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항공기 승무원마저도 비행기를 타기 힘들었지만, 아무튼 나도 3년간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육로가 막힌 대한민국에서 비행기란 무엇인가. 야간버스에서 자다 깨 여권 검사를 당하는 경험처럼 새로운 가능성, 이국적인 상황, 낯선 여행 그 자체다. 하지만 동시에 시간당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운송수단이기도 하다. 유럽환경청(EEA)은 승객 한 명당 비행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버스의 4배, ..
영국의 윌리엄 왕세자 부부가 지난달 30일 미국 보스턴을 방문했다. 왕세자 부부는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본인이 설립한 조직인 어스샷 상(Earthshot Prize)을 주기 위해서 미국을 찾은 것이다. 왕실이 최근 몇 년 동안 채택한 대의명분인 이 상은 그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나, 어찌 되었든 기후 문제에 국제적인 여론을 환기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구태여 영국에서 미국까지 와서 시상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올해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문샷(Moonshot) 60주년이 되는 해이며, 보스턴은 미국 혁명의 요람이자 케네디 가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어스샷이라는 상의 이름은 케네디 대통령의 “문샷” 이니셔티브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문샷’은 ‘달 ..
북태평양 플라스틱 섬에서 우연히 한글이 적힌 쓰레기를 발견한 건 2018년 9월이었다. 그린피스 팀은 물 위를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집어 올려 국적과 제조사를 확인했다. 누가 이 쓰레기를 만들었고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추적하는 과정이다. 형체가 온전한 쓰레기가 많지 않아 작업은 더뎠지만, 빨간 병뚜껑에 새겨진 하얀 코카콜라 로고나 푸른 바구니 옆에 적힌 한자는 선명했다. 그러다 손에 잡힌 게 우리나라 식품기업의 하얀색 플라스틱 통이었다. 마요네즈를 담는 통이 분명했다. 하필이면 한글이 볼록하게 각인되어 지워지지도 않았다. 나는 바다 이끼가 잔뜩 붙은 냄새 풍기는 통을 꽁꽁 싸서 집으로 갖고 왔다. 방송과 강연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머나먼 북태평양 플라스틱 섬에 우리나라 쓰레기도 있다니. 다들 놀라..
지난 8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률 전망 보고서는 2050년의 경제성장률이 0.5%에 그치고 사실상 ‘제로성장’이 예상된다고 전한다. 인구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 같은 변화가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생산연령 인구 비중이 2020년 72.1%에서 2050년 51.1%로 하락하면서 2041년부터 매년 국내총생산(GDP)이 평균 0.7%씩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로성장이라는 미래에 많은 사람들, 특히 경제 전문지들은 큰 우려를 표한다. 경제성장률은 우리의 일자리이고 소득이고 선진국의 지표이며 자존감이기 때문이다. 산업화를 먼저 시작한 많은 강대국들이 제로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우리는 한국은 아직 예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2050년은 한국..
‘페트병 뚜껑을 본 적 있나요’라고 물으면 아마 뚜껑에 써진 브랜드나 색을 살필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 덕후’들은 병뚜껑 안쪽에 고무나 실리콘이 껴 있는지부터 찾는다. 재활용 4대 원칙은 ‘비행분석’(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는다)인데 이중 소재 병뚜껑은 이미 재질이 섞여 있는 상태라 재활용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중 병뚜껑을 사용하는 ‘나랑드사이다’에 열렬히 편지를 썼다. 다른 탄산음료처럼 재활용 가능한 병뚜껑으로 교체해달라고 말이다. 며칠 전 동아오츠카는 나랑드사이다를 단일 재질 병뚜껑으로 교체한다고 응답했다. 그런가 하면 ‘카카오임팩트재단’에서는 회의 음료를 주문하면 일회용컵도 딸려 오는데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의지가 있어도 대안이 없다니! 우리는 다회용컵과 음료를 싸 들고 회의장에 ..
벌써 16년 전 일이다. ‘그린보트’ 두 번째 출항에 여섯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탔다. 보름 동안 1000명 이상이 한배를 타고 진행하는 연수 과정이라 아이랑 너무 오래 떨어지는 게 힘들어 함께 배에 올랐다. 어찌저찌 일을 보다 첫날 갑자기 아이를 선내에서 잃어버렸다. 8층짜리 건물 크기 크루즈선이라 정신이 아득했다. 나 역시 처음 타보는 배라서 잔뜩 긴장하며 문마다 열고 다녔는데, 어느 문을 하나 열고는 무릎이 꺾여 주저앉았다. 시퍼런 파도가 난간에 들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은 매우 무겁지만 만약에 아이가 이걸 열고 나갔을 생각이 들자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지나가는 우리 직원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나 좀 살려줘”라고 말했다. 여섯 살짜리 아이를 이 배에서 잃어버렸는데, 어디서도 안 보..
월 9유로, 한화 1만2500원이면 기차와 버스 자유 이용. 지난 6~8월 3개월 동안 독일 정부가 시행한 근거리 대중교통 할인 정책이다. 물가와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시민들의 부담을 덜고 탄소배출도 줄이려는 의도였다. 정책의 결과는 놀랍다. 무려 5200만여명이 9유로 티켓을 샀다. 이 나라 성인 모두 한 차례씩 구매한 셈이다. 티켓을 이용한 사람 중 20%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다른 27%는 버스나 전철을 한 달에 한두 번 타는 게 전부였다. 이용객 절반이 자가용을 놔두고 대중교통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독일 통계청은 이 정책 첫 달인 6월 철도 운송 이동량이 코로나19 이전 같은 시기보다 평균 42%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시기 중거리 도로 교통량은 6% 줄었다. 덕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