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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했지만 시점이 문제다. 그 의도가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하필 살아있는 권력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두고 기존 관례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왜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부터 법무부가 공소장 제출 거부와 비공개를 결정한 것인지 설득력 있는 이유를 대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공소장 원문이 아니라 공소사실의 요지자료를 제출한 근거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들지만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는 법률체계상 상위규범인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법무부의 비공개 결정이 국회와 법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국민적 관심이 커 알권리 차원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이다.  

법무부의 공소장 제출 거부와 비공개 결정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관행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현행법 규정상 모순이나 충돌은 없는 것인지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언론에 잘 부각되지 않았던 형사소송법 제47조는 소송에 관한 서류의 ‘공판의 개정 전’ 비공개를 명시하고 있고 공소장은 ‘법원’이 보관하는 소송서류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를 인정하고 있어 국민적 관심사인 중대 범죄나 행정부에 대한 견제를 이유로 한 공개는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도 예외사유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상당수 언론이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방침을 비판한 것도 알권리와 언론·보도의 자유 차원이다. 알권리를 위해 공소장 전문을 공개한 신문도 있다. 여러 매체에서는 이를 토대로 공소사실을 확인된 사실처럼 다루고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개입이 사실인 양 호도하는 기사제목과 표현도 눈에 띈다. 재판과정에서 검사와 피고인의 공방을 통해 확인되고 확정되어야 할 혐의사실이 이미 결론이 난 사실처럼 국민에게 알려진 것이다.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런 보도 자체가 유죄의 여론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언론의 무분별한 피의사실 보도로 곤욕을 치른 터라 집권여당 출신의 법무부 장관은 이러한 언론보도의 행태를 우려해 공소장 비공개를 결정했을 것이다. 

우리는 뭐든지 빨리, 미리 하고 싶어 한다. 그 조급함을 언론이 채워준다. 피의사실 언론보도나 공소장 공개가 그렇다. 조금만 기다리면 공판이 열리고 공소장이 공개될 터인데 그새를 참지 못한다. ‘미리, 빨리’ 알아야 알권리가 충족되는 것 같지만 반쪽이다. 공소장은 검사의 일방적 주장이고 피고인이 된 피의자의 주장과 반박은 들어있지 않다. 언론이 공소사실을 가감 없이 보도하면 첫 공판이 열리기도 전에 영락없이 범죄자가 되어 버린다. 물론 재판부는 언론과 여론에 영향받지 않고 공정하게 재판할 것이지만 딱히 그 신뢰가 높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채택되면 더욱 그렇다. 법무부가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국회 마음대로 언론이나 국민에게 전문을 공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면 검찰권 행사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면 된다. 그런 정도만 언론에 공개되고 보도되면 국민의 알권리는 충족된다. 

미국은 기소와 동시에 공소장 공개가 원칙이라지만 독일은 다르다. 언론·보도의 자유와 알권리 대 무죄추정의 원칙과 공정한 재판보장 사이에 무얼 우선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평가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은 전자, 독일은 후자를 우위에 둔다. 독일 형법(제353d조 3호)엔 공소장의 전문 또는 중요한 부분을 공판이 열리기도 전에 문장 그대로 공개하는 걸 금지하고 1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우리의 형사소송법에 따르더라도 공판 개정 전 소송서류는 공개금지다. 법무부가 대검과 협의해 공소장 국회 제출과 공개여부를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검사의 공소제기로 공소장 원본은 공소제기를 받은 법원이 보관하는 서류가 된다. 그러면 담당재판부가 공판 개정 전에 국회의 공소장 제출 요구를 따를 것인지, 공개의 예외사유에 해당하는지, 원문 그대로 공개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게 맞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의 법무부 관례는 잘못이다. 절차와 방식에 관해 법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여러 관련 법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담당재판부가 국회의 제출 요구에 응하되 공판 개정 전까지는 전문이든 일부든 공소장 내용을 문장 그대로 공개하지 못하도록 국회에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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