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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나는 어느덧 세상을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이익 없이는 아무도 오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이익 없이는 아무도 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부모형제도 계산 따라 움직이고
마누라도 친구도 계산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게 싫었지만 내색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너 없이는 하루가 움직이지 않았고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 박용하(1963~ )


△ 돈 가는 데 사람 간다. 돈 가는 데 시간 간다. 돈 없이는 개미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고 하루가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과 돈은 어긋나기 마련이라는 말도, 사람 나고 돈 났다거나 돈이 거짓말한다는 말도 다 옛말이다. “애용할 수 있는 것은/ 사고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칼이 그렇고 방아쇠가 그렇고/ 버튼이 그렇고 핸들이 그렇고/ 돈이 그렇고 음경이 그렇다/ 사고치지 않으려면 손이 없어야 한다”(‘하찮은 빨래집게가’). 사람은 돈을 따라 가고, 돈이 사람을 내고 돈을 쥔 손이 거짓말을 한다. 오늘날 돈 잃은 세상이란 더 이상 사람 살 곳이 못된다.
돈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과 사회를 주조한다. 돈은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과 한패여야 하는 인간을 차가운 계산기로 만들곤 한다. 돈에 관해서라면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부모형제는 물론 마누라나 친구도 버리게 만든다. 돈이 사람을 울리고 돈이 사람을 속인다. 마술사에게 조종당하는 뱀처럼 너나없이 돈의 최면에 들린 사람들에게 돈은, 정말 마술사처럼 그 모든 것과 자유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그 모든 것에로의 자유’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나는 두개골로 말하지 않고 돈으로 말하는가”(‘질문’)라고. 왜 우리는 사람으로 말하지 않고 돈으로 말하는가라고.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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