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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王을 죽인 나


王을 죽인 내가 내 뒤의 무수한 나에게 외친다. “나는 王을 죽이지 않았다” “나는 王을 죽이지 않았다” 내 뒤에 무수한 내가 웃기 시작한다. 돌멩이 날아오는 대낮에 나는 王의 육체 속으로 도주한다. 王의 육체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나는 허나 王에게 내 가슴의 젖을 준다. 王의 육체 속은 벌판이다. 냇물도 흐르지 않고 말라붙어 있을 뿐, 그 냇물을 뜯어내면서 나는 벌판에 입술을 댄다. 밖에서 무수한 내가 웃기 시작한다. 벌판에서 나는 하늘을 달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하늘, 하늘, 저 푸른 하늘은 끝끝내 없다.


- 이승훈(1942~ )



△ 굳이 무의식이라는 기표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 끝을 내가려가고 있는 치명적인 것들이 있다. 혁명을 혁명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전복과 수복 사이에서 항복밖에 할 수 없는 모서리의 시편들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결백이라는 말을 다시 배워야 한다. 아직도 우리는 시가 싸워야 하는 ‘저 너머’를 위해 다시 살아온 날들을 기록해야만 한다. 가령 난처한 표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때가 있다. 그 자리를 이승훈이라는 이름으로 교환해야 할 때가 있다. 사물을 입체적으로 양각화시키는 한 시인의 시선은 사물이 생기기도 전에 사물이려고 노력하며 발생했던 것들을 바라보는 폭풍이자 고독이다. 인간이 소유한 적이 없는 의식 속으로, 의식을 지탱하고 있는 의식의 심연 속으로, 부르지 못한 곳을 부르고 있는 혀를 본다. 그렇다면 그 혀는 이토록 외로울까. 아니 고통스러울까.


이승훈의 시가 지독하게 지독한 이유는 백색(白色)을 끝까지 들여다보려는 절규 때문이다. 이제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시인의 혀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든 누구도 그 혀를 뽑을 권리는 없다. 그것이 ‘현대’이자 그것이 ‘문학’이다. 내일의 ‘현대문학’은 달라질까.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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