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울 엄마 나이, 올해 71세다. 그런데 얼마 전 하시는 말씀이 찬란하게 놀라웠다. ‘지금 인생에서 절정의 행복을 느낀다’는…. 엄마의 고향은 전라북도 부안이다. 가난한 농촌 출신의 젊은 부부는 삶이, 무엇보다 자식들의 삶의 조건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도시로 이주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난 남편은 뿌리 뽑힌 수목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방황하다가 먼저 서둘러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막내딸이 아홉 살 되던 해였다. 그 이후 젊은 부안댁은 아이들을 혼자 키웠다. 남편도 없이 도시에서 세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건 온갖 설움과 수모, 육체적 고통을 수족인 듯 달고 살아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얼마나 악착스럽게 살았던지 남자 몫의 일당을 받기 위해서 벽돌 70장 얹은 지게도 졌다는 게 이제 와 무용담처럼 들려주는 엄마의 얘기다.

“외로움이니, 두려움이니 그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 감정은 내게 사치였어. 어쨌든 살아가야 하니까. 어린 새끼들을 굶길 수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엄마에게 물었다. “그래서 행복한 거야? 그렇게 키워낸 자식들이 이제 다들 그런 대로 먹고살 만하니까?”

“올해 니 오빠 막내까지 대학 보내고 나서 비로소 내 시간, 내 인생을 마음껏 누리게 됐으니까. 여행가듯 내 발로 시골 딸네 집 와서 이렇게 산으로 들로 실컷 쏘다니다 지치면 커피 한 잔 마시고 책을 읽고 낮잠을 잘 수 있다니…. 그냥 행복한 정도가 아니라, 최고의 행복이라니까. 황혼의 행복…. 아주 황홀할 정도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얼마나 신선하게 빛나 보이던지…. 신비로울 정도였다. 누군가 엄마에게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문득 그날 엄마가 읽고 있던 책이 궁금해졌다. 강상중 선생의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 TV가 없는 산골 딸네 집에서 너무도 심심해진 나머지 읽게 된 책. 엄마는 그 책을 읽다가 몇 번인가 돋보기를 내려 놓고 눈물을 찍어냈다.

김상중 저서 '살아야 하는 이유'


“아들이 죽었나봐. 극도의 신경증인지 우울증인지 뭐 그런 병에 걸려서 많이 아팠던 모양인데 그 때문에 자신의 출생을 저주했다는구나. 자식이 그리 죽으면 얼마나 비통할까? 나라도 살기 싫어서 구태여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묻겠구나 싶어 절로 눈물이 났다.”

19세기 미국인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에는 행복이 ‘타인의 불행을 바라볼 때 생기는 일종의 안도감’이라고 정리되어 있다. 그렇다면 혹시 엄마가 일흔이 넘어 느낀다는 그 ‘절정의 행복’은 그런 안도감과 비슷한 것일까?

“말도 안돼. 이 나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목격했겠니? 그런 걸 보면 내 일인 듯 가슴이 아프지, 안도감이라니…. 그런 게 아니라, 뭐랄까. 난 못 배운 사람이잖니? 자식들한테 물려줄 재산도 없고. 살 날도 얼마 안 남았고. 그런데도 순간순간 사는 기쁨을 느끼는 내가 새삼 고마운 거지. 이런 삶도 하늘의 축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엄마와 함께 기억되는 그 인연 때문에도 나는 지난 봄부터 강상중 선생의 신작을 기다렸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소설이었다. 친구를 잃은 스무 살 대학생과 아들을 잃은 중년의 교수가 죽음과 삶에 관해 주고받는 편지로 구성된 소설. ‘죽는다는 건 무의미하게 그냥 사라지는 건지, 그렇게 죽을 거라면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인생에 살 의미가 있는지’ 묻는 청년의 편지에 소설 속 화자이며 작가 그 자신이기도 한 강 교수가 답한다. “사람이 사는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며 “과거는 그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가 죽었다 해도 분명히 존재했던 그만의 과거로 있는 거라고.

실제 아들의 죽음과 함께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수많은 죽음들을 목격하면서 그 많은 죽음을 이대로 잊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강 교수 자신의 체험담과 마음이 담긴 소설 <마음>을 읽고 생각했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세월호와 함께 사라진 300여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는 과거로서 우리에게 전하는 유산이 무엇인지….

“내 어머니를 보렴. 시장에서 다라이 파는 여자의 고맙다 소리가 이상하게 가슴을 울린다며, 마당에 호박이 이렇게 예쁘게 열렸다며 좋아하는 내 어머니…. 우리 삶 속으로 스며드는 생의 기쁨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단다. 넌 그걸 발견해야 해. 살면서 그때그때, 그 장소에 있는…. 다른 사람들 말은 듣지 마. 특히 괴물 같은 국가나 기관에 종속된 어른들 말.”

죽은 내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다. 난 내 아버지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들을 통해 ‘죽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삶에 대한 더 많은 중요한 얘기를 들려준다’는 걸 알았다. 따라서 우리는 제대로 살기 위해 죽은 자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행히 죽은 자들은 책 속에 살아 있다. 귀 기울이면 그들이 응답한다. “새로운 세대는 마치 난파된 배를 버리듯이 지나간 세대가 벌여놓은 사업을 버리는 법이라오” 했던 소로처럼 말이다.


김경 | 칼럼니스트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