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인생은 선택이다. 지금 이 순간 앉아서 이 글을 쓰는 대신, 마음먹기에 따라 나는 책상 위로 올라가 플라멩코 춤을 출 수도 있고, 느닷없이 춘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을 수도 있다. 순간마다 무한대로 열려 있는 삶의 옵션들 중에서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보다시피, 춤과 여행을 잠시 접어두고 글쓰기를 하기로 결정한 데에 야생학교와의 약속이라고 하는 수긍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멀쩡한 옵션들 다 제치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선택을 할 경우에는 대체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이때 우리가 사용하는 핵심어는 ‘굳이’이다. 질문은 다음과 같은 형태를 띤다. “왜 ‘굳이’ x를 해야만 하는가?” 빈 공간 다 놔두고 통로를 막고 잡담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왜 ‘굳이’ 그곳에 서서 통행을 방해해야 하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눈살을 찌푸린다. 물론 관찰자가 모르는 이유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혼자만의 사적인 영역에서라면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특히 많은 생명과 관계된 것이라면 ‘굳이’ x를 하려는 쪽에서 설명과 설득의 부담을 지는 것이 당연하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세계 최초로 ‘보이지 않는 빌딩’이 세워진다는 소식이 국내외 언론을 통해 최근 보도됐다. ‘타워 인피니티’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표면에 LED 프로젝터와 카메라를 설치해서 주변의 풍경 영상을 실시간 투사함으로써 마치 건물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건물의 위치는 다른 모든 곳을 ‘굳이’ 제치고 인천공항 주변을 임지로 인천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은 상태이다. 이른바 ‘투명 빌딩’에 비행기나 새가 충돌하지 않겠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일차적인 질문에, 담당 건축회사인 GDS 아키텍트의 찰스 위는 포브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비행기나 새는 건물을 투명하게 보진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마디로 진짜 투명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정해진 몇 군데의 특정 지점에서만 투명하게 보이도록 설계된 데다가, 기존 비행기 항로상에 위치하고 있지 않아 안전상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타워 인피니티 조감도(출처 :경향DB)


이건 뭘 몰라도 너무 모르시는 말씀이다. 특히 새에 대한 발언이 그렇다. 멀쩡히 보이는 건물에조차 새가 충돌해서 죽는 경우는 이미 심각한 생태적 문제이다. 미국에서만 한 해에 10억 마리의 새가 유리나 건축 구조물에 충돌하여 사망한다. 건물 충돌은 서식지 파괴 다음으로 인간의 영향으로 인한 조류사망의 가장 큰 원인이다. 새들은 투명 또는 반사 유리, 플라스틱 표면을 장애물로 인지하지 못하며, 심지어는 앉은 자리에서 1m 떨어진 유리로 돌진하기도 한다. 또한 새는 날 때 앞보다는 아래를 보는 경향이 있으며, 인간처럼 양안이 앞으로 배열되지 않고 삼차원 공간에서 움직임을 인지하도록 머리 양옆에 있어서, 이동 방향에 집중된 고해상도 시각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새들이 바보라서 부딪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지어놓은 괴물 같은 건물을 감당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투명한 고층빌딩이라니?


진짜 투명하건, 특정 각도에서만 투명하건 간에, 시각정보의 감소는 부분적으로 이뤄지더라도 이동하는 새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인천지역은 중요한 철새도래지인 서해안 갯벌과 인접한 곳인 만큼 위험은 불 보듯이 아니라 불에 타듯 뜨겁고 뻔하다. 최첨단의 기술과 엄청난 자본을 들여, 공항 근처에 안 보이는 건물을 짓지만 안전하다고 하는 프로젝트. 이 사업이 안은 겹겹의 모순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대목은 건축의 배경 ‘철학’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찰스 위는 경쟁률 높은 공모전을 통과하기 위해 고층건물에 흔히 요구되는 랜드 마크 개념을 뒤집었다고 한다. 더 ‘보이려고’ 하는 기존의 건물과 정반대로 오히려 ‘안 보이게’ 함으로써 랜드 마크의 개념을 재정의했다면서, 노자의 도덕경을 그 철학적 배경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보다 노자의 사상을 잘못 해석한 사례는 역사상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와 자연 관조를 강조한 도가사상은 이 흉측한 반생태적 구조물을 조금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노자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분명히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왜 ‘굳이’ 행(爲)하려 하는가? 야생학교도 함께 묻는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