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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에서 아직도 곤충 채집이 가능하던 시절, 우리는 포충망을 메고 공원을 탐험하며 여치, 땅강아지, 풍뎅이 등을 잡곤 했다. 일부는 집에 데려가 키우기도 하고 일부는 좀 보다가 그 자리에서 놔주었다. 돌이켜보면 멀쩡히 잘 사는 녀석을 괜스레 잡아와 좁은 수조 안에서 여생을 보내게 한 일들이 무척 죄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그런 종류의 취미를 모두 그만두었고, 자유를 누리는 생물을 관찰하는 재미만을 추구하기로 했다.

한때 동물에게 못할 짓을 하던 나였지만, 그것도 주변의 몇몇 아이들에 비하면 매우 신사적인 편이었다. 손가락으로 잠자리의 머리를 튕겨 날리고, 나뭇가지로 송충이 꼬치를 만들고, 개미굴에 약을 붓고 기어 나오는 족족 눌러 죽이던 아이들의 잔인무도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실 그렇게 특이한 경험은 아니다. 얘기를 해보면 누구나 이런 기억이 하나쯤은 있다. 어린애야 뭘 잘 모른다고 치자. 어쩌면 매일 컴퓨터 게임에만 매달리는 것보단 차라리 벌레라도 괴롭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른이, 심지어는 한 집안의 가장이 자연을 유린, 착취, 포획, 살상하는 재미에 폭 빠져 지낼 때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여기서 키워드는 재미다. 즐거움을 누리는 방식이 어떤지에 따라 개인과 사회의 수준과 품격이 결정된다. 영화에 나오는 악당은 주인공을 괴롭히는 희열에 껄껄대고, 그것을 보는 관객은 분노한다.

“누구라도 즐거우면 된 거 아니냐”며 극장을 나오는 이는 없다. 기분만 좋다고 해서 ‘장땡’이 아니라, 그 기쁨이 과연 정당하고 자연스러운지가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꽁꽁 언 강에 수십만명이 시위대처럼 몰려 있다. 망치나 전기톱, 날카로운 낚싯바늘과 같은 장비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목적은 단 한 가지. 얼음 아래 요놈을 어떻게 좀 낚아볼까. 뭣도 모르는 물고기들은 위에서 벌어지는 불안한 북적거림이 심상치가 않다. 비밀 대피소에 숨어 독일군의 구둣발 소리를 들으며 제발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유대인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상상해본다.

이내 엄청난 수의 낚싯바늘과 어망이 차가운 물밑으로 내려진다. 휘릭. 한 마리가 잡혀 끌려 올라간다. 수면 위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곧 옆에서도 즐거운 비명이 하늘을 가른다. 그 옆에서도. 저기서도. 정말로 물 반, 고기 반 상황이라는 믿기지 않는 낚시 낙원의 환희에 빠진 군중은 추위도 까맣게 잊은 채 산천어를 향한 욕망을 이글이글 불태운다.

 

화천 산천어축제 오픈 (출처 :경향DB)

잡힌 고기는 실제로 바로 불 위에서 익혀지고, 그러기가 무섭게 입속으로 사라진다. 미국 CNN방송이 꼽은 세계 7대 겨울철 불가사의 중 하나인 강원 화천의 산천어축제장 모습이다. 짐작컨대 ‘불가사의’라는 말 속에 함의된 냉소를 알아차리는 이는 아무도 없다.

고요한 산골짜기를 뒤흔들어 놓는 이 얼음판 아수라장이 가져다주는 인문학적 충격을 차치하고라도 문제는 이미 산적해 있다. 축제를 위해 화천천의 바닥을 굴착기로 긁어내고, 빙판을 인조적으로 만들기 위한 물막이 공사로 하천의 수중생태계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청정 자연을 표방하면서도 양식으로 기른 물고기로 채우는 것도 모자라, 부족분을 일본산 잡종으로 메우면서 외래종을 대량으로 강에 유입시켰다. 포식성이 강한 이 종은 열목어 등 토종 민물고기를 잡아먹어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다. 산천어 말고도 조용히 겨울을 나려는 다른 수중생물들이 어떤 고욕을 감내해야 하는지는 설명이 불필요하다.

하지만 핵심은 여전히 재미다. 어째서 우리가 재미를 느끼는 방식은 이토록 파괴적이어야 하는가? 꼭 자연을 취하고, 득하고, 내 것으로 삼아야만 쾌감이 느껴지나? 점잖게 관조하고 음미하며 자연의 안녕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도 지루한가?


세계적으로 친환경적인 생태관광 산업은 관광시장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그냥 보는 행위(잡아먹는 것이 아닌) 자체가 핵심적 재미인 탐조활동은 미국, 유럽, 일본에서 이미 굳건히 자리 잡은 취미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발견된다.

그러나 아직도 대세는 한 마리라도 잡아야 직성이 풀리고, 초장에 찍어 먹어야 비로소 흡족해한다. 하지만 그 어떤 말로 미화해도 이 빙판 위의 킬링필드가 집단적 살육의 현장이라는 사실은 부정될 수 없다. 모두가 사냥에 혈안이 된 현장을 ‘축제’라 부르는 것이 극소수에게만 이상하게 들리는 것인지, 야생학교는 어리둥절하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sanha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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