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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취임 7개월이 되었다. 대통령실 이전 빼고 도대체 뭘 했냐는 말도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70%쯤의 국민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방식이나 태도 등을 반대하지만, 그는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라며 과감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만 나가는 저돌적 스타일이다. 그러는 게 자신과 여당은 물론 국민에게도 좋지 않다는 지적이 많지만, 좌고우면 없는 진격을 거듭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앞으로 나가는 방식은 대개 ‘싸움’이다. 매일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 주로 직접 싸우지만, 가끔 대리인을 내세우기도 한다. 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전술의 기본쯤은 간단히 무시한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싸움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싸움은 안팎을 가리지 않았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이끈 이준석 대표는 ‘내부 총질이나 하는 사람’ 취급당했고, 모욕적으로 쫓겨났다. 대통령은 이준석 대표 축출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연출했지만, 실은 집요했다. 대선 과정에서 품었던 앙심을 지방선거 끝나자마자 풀어버렸다. 복수전의 승자는 대통령이었다. 여당 의원 115명 가운데 적어도 71명 이상이 줄을 설 정도로 당에 대한 장악력도 세졌다.

MBC와의 싸움도 희한했다. 욕설과 비속어 때문에 불거진 문제니까, 반성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는 반전을 시도했다. MBC의 ‘악의적’ 보도 때문에 국익이 훼손되었다며 싸움을 걸었다. 대통령 업무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며 윽박질렀다. 먼저 싸움을 걸어놓고는 이를 핑계로 출근길 약식회견도 중단해버렸다. 대통령실 이전 덕에 약식회견으로 국민과 소통할 기회를 얻었다는 자화자찬도 간단히 거둬버렸다.

야당과의 싸움은 집요했다. 어떤 대통령도 대선에서 겨룬 상대 후보를 몰아세우지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사뭇 달랐다. 검찰이란 든든한 뒷배가 있으니 이런 싸움쯤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여기는 걸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검찰의 칼끝이 곳곳에서 번득이고 있다. 대장동이란 파도를 넘으면 다음은 성남FC, 그다음엔 다른 무언가를 꺼낼 들 것이다. 재판에서의 유무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재명이란 사람을 고꾸라트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모두 동원하는 것 같다. 

화물연대와의 싸움은 놀랍기만 하다. 자영업자이기에 노동자가 아니라면서도 강제노동을 시키겠단다. 대통령이면 뭐든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고서야 쉽지 않은 발상이다. 업무개시명령이 실제로 발동된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어떤 불법과 폭력도 없었는데, 처음부터 불법과 폭력을 엄단하겠다고 한다. 노동자를 그저 잠재적 범죄자쯤으로 여기는 거다. 파업사태를 속히 마무리하고 교통안전과 화물노동자의 생존권까지 함께 보장하기 위한 대화와 타협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힘을 쓰면 상대가 굴복할 거란 이상한 신념에 기댄 채 싸움만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강경 일변도로 치닫는 것은 위험하다. 대화를 거듭했는데도 사태를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서야 한번쯤 고려해볼 수 있을까 싶은 강경책들이 파업 초기부터 과감한 선제공격의 수단으로 둔갑했다.

업무개시명령과 잇단 고소·고발에도 화물연대가 파업을 계속하는 까닭은 과로, 과적, 과속 없이 생존권을 보장받고 싶다는 보편적 욕구 때문이다. 대통령이 윽박지른다고 고분고분하게 파업 이전으로 돌아갈 사람은 별로 없다. 문제를 제대로 풀지 않으면 제2, 제3의 화물연대 파업이 반복될 거다. 

검사실에서 만난 피의자들은 검사의 호통에 금방 위축되고 투항할지 모르지만, 생존권이 걸린 노동자들, 삶이 걸린 시민들은 사뭇 다르다. 잘못한 게 없기에 위축될 일도 없고 생존이 걸린 문제라 물러설 수도 없다.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을 자꾸만 떠밀면 사달이 난다.

지금은 대통령이 싸움에만 열중할 때가 아니다. 상위 20% 가구의 자산은 16억5457만원, 하위 20%는 2584만원으로 64배 차이가 난다. 역대 최대 규모의 격차다. 양극화만이 아니라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에 따른 경제위기도 심각하다. 당장 위기만이 아니라 훨씬 더 어려워질 수 있는 내년 상황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경제위기 때문에 겪을 고통을 함께 나눠질 수 있도록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는 등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다.

대통령은 싸움이 아니라 대통령의 일을 해야 한다. 대통령에 취임하며 선서했던 그대로, 헌법 수호, 국가 보위,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민족문화의 창달을 위해 성실히 일하는 게 바로 대통령에게 주어진 헌법상 책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연재 | 정동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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