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게 자네의 얼굴인가?
여보게 박군, 이게 정말 자네의 얼굴인가?

알코홀병에 담거논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마르다 못해 해면같이 부풀어오른 두 뺨
두개골이 드러나도록 바싹 말라버린 머리털
아아 이것이 과연 자네의 얼굴이던가

쇠사슬에 네 몸이 얽히기 전까지도
사나이다운 검붉은 육색에
양미간에는 가까이 못할 위엄이 떠돌았고

침묵에 잠긴 입은 한 번 벌리면
사람을 끌어다리는 매력이 있었더니라.

4년 동안이나 같은 책상에서
벤또 반찬을 다투던 한 사람의 박은 교수대 곁에서 목숨을 생으로 말리고 있고
C사에 마주앉아 붓을 잡을 때
황소처럼 튼튼하던 한 사람의 박
모진 매에 창자가 꿰어서 까마귀 밥이 되었거니.

이제 또 한 사람의 박은
음습한 비바람이 스며드는 상해의 깊은 밤
어느 지하실에서 함께 주먹을 부르쥐던 이 박군은
눈을 뜬 채 등골을 뽑히고 나서
산송장이 되어 옥문을 나섰구나.

박아 박군아 ××!
사랑하는 네 아내가 너의 잔해를 안았다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는 동지들이 네 손을 잡는다
이빨을 악물고 하늘을 저주하듯
모로 흘긴 저 눈동자
! 나는 너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오냐 박군아
눈을 빼어서 갚고
이는 이를 뽑아서 갚아 주마!
너와 같이 모든 ×을 잊을 때까지
우리들의 심장의 고동이 끊칠 때까지.


_심훈, <박군의 얼굴> 전문


보신 것은 심훈이 1927122일 쓴 시 <박군의 얼굴>입니다.
소설 <상록수>와 시 <그날이 오면>이 중등 한국어 교과서에 실린 덕분에, 심훈은 아주 좁고 잗다란 범주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소설가,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영화인이었죠.
1925년 제작된 영화 <장한몽>에는 이수일의 대역으로 출연했고, 1926년에는 동아일보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소설인 <탈춤>을 연재합니다. 영화소설이란 영화배우들이 장면을 연출한 사진이 삽화를 대신해 소설 문장과 유기적인 짜임을 이루는 소설을 말합니다. 1927년 영화 공부를 하러 일본에 가서는 일본 영화 <춘희>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같은 해 조선으로 돌아와서는 영화 <먼동이 틀 때>의 원작·각색·감독을 맡으며 제작까지 해냈습니다. 연기·영화의 원작 집필·각색·감독·제작까지(물론 영화평론도 썼습니다) 두루 감당한 심훈에게 영화인은 정말 마침맞은 호칭 아닙니까.
그 앞 이력에도 남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18세 되던 1919, 3·1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심훈은 3·1운동 덕분에 6개월이나 옥고를 치른 데다 다니던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성제일고보)에서 제적당하고 맙니다. 그러고는 중국으로 건너가 항주와 상해를 오가며 생활했는데요, 이때 심훈은 민족주의자들 가운데서는 무장투쟁 노선을 걷던 이들과 사귑니다. 그리고 좌파로는 경성제일고보 1년 선배인 박헌영을 비롯해 신채호, 여운형 들과 깊이 사귀었습니다. 여운형은 1936년 심훈의 장례식에서 심훈 최후의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울면서 낭송하며 심훈을 보낼 정도로 심훈과 절친했지요.

이렇듯 심훈은 1923년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 중국에서 민족주의자들은 물론 좌파와 두루 사귀었습니다. 돌아와서는 좌우합작 단체인 신간회를 주도한 민족주의자 홍명희와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다시 왼쪽에서는 좌파 문학 조직인 염군사에 참여했고, 1925년 염군사가 또 하나의 좌파 문학 조직인 파스큘라와 합쳐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가동맹)가 창립될 때에는 그 창립 멤버였습니다.
무장투쟁 노선의 재중 민족주의자들, 한국 공산주의운동사의 효시를 쏘아올린 상해의 좌파들, 또 신간회를 주도한 민족주의자와 두루 사귀는 동시에 카프에 참여한 심훈.
당시로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새로운 매체인 영화에 뛰어들 만한 감수성이 있었고, 거기서 성과를 이뤄 한국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심훈.
그에게 그저 계몽”, 그저 민족주의”, 그저 문인딱지 붙이기는 암만해도 무리인 듯합니다.

이제 <박군의 얼굴>, 무지막지하고 생경해서 행만 간 격정 토로로 보이는 시 같지 않은 시가, 심훈이 썼음 직한 작품으로 다가오는지요. 간단히 주석하겠습니다.

제목 박군의 얼굴의 박군, 또 시 속에서 애타게 호명되고 있는 박군은 박헌영입니다.
박헌영은 19251122일 터져 초기 조선공산당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힌 일명 신의주사건의 여파로 같은 해 1129(또는 30) 서울에서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됩니다.
이후 1926년에 일어난 6·10만세운동의 와중에 간신히 재건된 조선공산당에 대한 검거가 시작되고, 이전 신의주사건과의 연계가 드러나자 박헌영은 다시 서울로 압송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됩니다.
신의주에서 터진 사건이 여섯 달에 걸쳐 서울에서 다시 불붙은 셈인데요, 1925년 신의주사건 때의 검거자(1차 조선공산당사건)19266·10만세운동 때의 검거자(2차 조선공산당사건)를 합쳐 모두 135명이 체포되고 그중 101명이 공판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1, 2차 사건을 통칭해 조선공산당사건이라 함).
박헌영의 첫 공판은 1927913일에야 열렸습니다. 박헌영은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 숨진 박병순의 죽음을 계기로 본격적인 미치광이 행세에 들어갑니다. 헛소리, 발작 들을 연기하며 보석과 탈출의 기회를 노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192711월에 들어서는 자살 시도에 똥을 먹는 연기를 하기에 이르죠. 그러고는 1122일 마침내 보석 허가를 받아 병보석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심훈은 박헌영이 병보석으로 서대문형무소를 나오던 날 친구들과 함께 옥문 밖에서 박헌영을 맞았습니다. 박헌영은 1928년 일제 경찰의 감시를 뚫고 아내 주세죽과 함께 소련으로 탈출하기까지도 꾸준히 미치광이 연기를 하며 관헌의 눈을 속였다고 하지요. 그러니 석방 당일은 어땠겠어요. 마중 나온 노모와 아내도 못 알아보는 체하며, 대인기피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위 시에서 심훈은 박헌영을 일러 나이다운 검붉은 육색에/양미간에는 가까이 못할 위엄이 떠돌았고//침묵에 잠긴 입은 한 번 벌리면/사람을 끌어다리는 매력이 있었더니라.고 했지만, 그 잘나고 우뚝한 벗이 미치광이가 되어 노모도 아내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라니요.

울화통이 터질 노릇은 이뿐이 아닙니다. 시를 통틀어 박헌영 외에 두 사람의 박군이 더 있지요. “벤또 반찬을 다투던 한 사람의 박1923년 천황 암살 기도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무정부주의자 박열입니다(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일제 패전 전까지 일본에서 22년간 복역). 박열은 심훈과 경성제일고보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죠. 그리고 황소처럼 튼튼하던 한 사람의 박은 앞서 말한, 2차 조선공산당사건으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 숨진 시대일보 기자 출신(시 속의 C가 시대일보)의 박병순입니다.
어머니도 아내도 못 알아보는 지경이 된 벗 앞에서, 기약 없는 옥살이를 하고 있는 벗, 고문당한 끝에 죽은(한마디로 맞다맞다 창자가 터져 죽은”) 벗을 떠올린 심훈. 그의 원통과 절통이 오냐 박군아/눈을 빼어서 갚고/이는 이를 뽑아서 갚아 주마!/너와 같이 모든 ×을 잊을 때까지/우리들의 심장의 고동이 끊칠 때까지.라고 울부짖는 데 이르렀습니다.

생경하다할 수도 있겠고, “직정이 생생히 느껴진다고 할 수도 있을 심훈의 시... 실은 그 가운데 <야구>를 읽다 이리 번잡해졌어요. 일찍이 영화에 눈뜬 심훈의 감각이 스포츠를 지나칠 리가 있나요. 한국 정치사의 거목일 뿐 아니라 한국 체육사의 위인이며 엄연한 스포츠맨이었던 여운형과 심훈의 사이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죠.
일제시대 한국문학 가운데는 식물학자가 주인공이 되어 연구의 디테일을 펼쳐 보이는 소설도 있고(유진오, <화상보>), 무대는 방송계 및 연예계에 가수와 제작자가 주연과 조연으로 나서는 소설도 있지만(이효석, <장미 병들다>) 기념용이나 행사용이 아닌 스포츠문학은 아마도 심훈의 <야구>가 유일할 겁니다.

그때 시대가 이랬습니다. 한 사람의 속이 아래 보시는 대로였습니다.
분명 야구를 노래하고 있는데, 공이 폭탄과 탄환으로 은유되고 방망이질이 폭발로 은유되는 시. 시대의 그림자와 시인의 우울이 깃든 <야구>... 그래도 한국 스포츠사가, 한국 야구팬이 갈무리할 만한 자료가 아닌가 합니다.


식지 않은 피를 보려거던 야구장으로 오라!
마음껏 소리질러보고 싶은 자여, 달려오라!

유월의 태양이 끓어내리는 그라운드에
상록수와 같이 버티고 선 점··……

꿈틀거리는 그네들의 혈관 속에는
붉은 피가 쭈 뻗어 흐른다.

피처의 꽂아넣는 스트라익은 수척의 폭탄.
HOME-RUN BAT! HOME-RUN BAT
배트로 갈겨내친 히트는 수뢰의 탄환,
시푸른 하늘 바다로 번개 같이 날은다.

VICTORY! VICTORY VICTORY, VICTORY!
고함소리에 무너지는 군중의 성벽,
찔려 죽어도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는
이 나라 젊은이의 의기를 보라!
지고도 웃으며 적의 손을 잡는
이 땅에 자라난 남아의 도량을 보라!

식지 않은 피를 보려거던 야구장으로,
마음껏 소리질러보고 싶은 자여, 달려오라!

_심훈, <야구> 전문

 


--
덧붙임---
*시 속 ×는 원래 글자나 뜻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부호로 덮은 것입니다. 검열의 흔적입니다. 이런 부호, 또는 이렇게 덮는 짓을 복자伏字라고 합니다.
*1925신의주사건은 어처구니없는 소극입니다. 19251125, 신의주 지역 좌파 청년들이 만취 상태에서 지역 친일파와 일본 경찰을 구타하고 으스대다 보안사고를 낸 끝에 조선공산당 조직이 궤멸에 이른 것입니다.
*수척手擲_손으로 던지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