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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사회부 차장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이란 책이 있다. 2005년 상당히 인기 있었던 책이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스티븐 레빗 교수와 저널리스트인 스티븐 더브너가 함께 썼다. 이 책은 일상생활 속에 숨겨진 어두운 이면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학교의 시험이다.


미국 시카고의 공립학교들은 1996년 ‘고부담’ 시험 제도를 도입했다. 시험점수가 낮은 학교는 교육당국의 엄한 관리를 받게 되고, 교사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하거나 해고되기 때문에 ‘고부담’ 시험이다. 학생들이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사들은 더 열심히 가르치도록 하고, 학생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책 안에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시카고 공립학교들의 성적은 올랐던 것 같다. 그런데 성적이 오른 이면에는 제도를 도입한 취지와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떤 교사는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에게 정답의 힌트를 줬다. 시간을 더 주는 교사도 있었다. 심지어는 학생들의 시험지를 고친 교사들도 있었다. 부정행위를 한 것이다.


결국 2002년 12명의 교사들이 해고됐고, 이보다 훨씬 많은 교사들이 경고 조치를 받았다. 부정행위를 통해 오른 점수를 빼면 실제 이 제도의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6월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때다. 충북의 한 여중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문제지에 답을 커다랗게 써서 다른 학생들이 받아쓰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험 감독을 맡은 교사는 모른 척했다고 한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짝짓는 식으로 자리를 배치했다고 한다. 의도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험 감독을 맡은 담임교사가 힌트를 줘 시험을 쉽게 봤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배경은 시카고와 다를 게 없다. 현 정부 출범 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력이 부진한 학생에게는 보충지도를 실시하고, 우수 학생에게는 성취동기를 부여하겠다며 일제고사를 부활시켰다. 일제고사가 교과부의 기대처럼 학생들의 학습 효과를 높였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아직 없다. 단지 부정행위 사례들만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일이 생기면 새로운 정책들을 내놓는다. 어떤 정책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급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어떤 정책은 나라의 수준을 보다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 중에서 의도가 나쁜 것은 사실 없다. 어느 누가 나라 잘못 되게 하려는 마음에서 정책을 내놓겠는가. 하지만 의도가 좋다고 해서 항상 결과도 좋은 것은 아니다. 정책을 결정할 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쳐 내놓은 정책도 부작용이 나타나 고쳐야 할 때가 많다.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는 이주호 장관 (출처: 경향DB)



요즘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으로 징계를 받은 학생의 조치 사항을 기재토록 한 교과부의 지침 때문에 교육계가 시끄럽다. 형사처벌 기록도 학생부에 남기지 않는 것과 비교해 형평성에 어긋나고, 사소한 잘못에도 가혹한 낙인을 찍어 학생들의 재활 기회를 막는다며 상당수의 시·도 교육청이 이 지침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이견이 있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을 막아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국민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부에 그 사실을 기록하는 방법이 유일한 대책인가. 그것 말고도 모두가 찬성하는 방법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왔다. 왜 이주호 장관은 효과도 검증되지 않았고, 반대도 많은 이 제도를 밀어붙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선이 불과 3개월 남았다. 많은 논의가 필요한 정책은 다음 정권이 들어선 뒤 시행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막판에 서두르다가 일만 복잡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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