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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중 | 동국대 의대 교수
탈 많고 말 많은 고리 1호기가 재가동되었다. 4년 전 수명연장 당시부터 말이 많았다. 원자로 건전성에 관한 직접 검사방법인 파괴검사에서 불합격을 받았음에도 보조적인 조사방법인 비-파괴검사에서의 합격을 이유로 수명연장이 허가됐다. 또한 수명연장 당시 안전성 조사 보고서가 수년간 공개되지 않아서 비밀주의 논란이 있었다. 결국은 복사도 하지 말고, 노트필기도 하지 말고 수천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그냥 와서 보기만 하라는 방식으로 공개됐다. 이렇게 부당한 방법으로 수명연장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짝퉁 중고부품 납품문제가 불거졌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것을 국산화라고 미화하여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후 납품비리 사건이 터졌다. 불량한 부품을 뒷돈을 받고 구입해주는 전형적인 비리였다. 결국 한수원 간부 22명을 포함해 총 31명이 구속되고 이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기점검 중이던 지난 2월9일, 고리 1호기의 전원이 상실되어 냉각수 공급이 되지 않아 원자로의 온도가 올라가는 중대사고가 발생했다. 비상발전기도 가동되지 않아 외부에서 전원을 끌어와서 냉각수 펌프에 전원을 연결했던 것이다. 자칫하면 후쿠시마와 같은 노심용융으로 갈 수도 있는 사고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고리본부장과 발전소장들의 공모하에 은폐됐고, 부산시의원의 폭로로 한 달 후인 3월13일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고리원전 본부장과 발전소장 등 5명이 구속됐고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향신문DB)
이후 한수원은 고리 1호기 재가동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 8명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들을 초청해 고리 1호기 안전점검을 요청했고, 이들은 8일간의 현장조사 끝에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보고서에는 6개의 잘한 점과 6개의 문제점이 적혀 있었다. 한수원은 이 보고서에 적시된 잘한 점 중 하나를 제목으로 뽑아 마치 IAEA 검증단이 고리 1호기가 안전하다고 발표한 것처럼 보도자료를 냈고,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였다. 완전한 사기극이었다.
원자로의 건전성과 관련된 이른바 ‘취성천이온도’의 문제가 제기됐다. 원자로의 온도가 급하게 변화될 경우 원자로가 유리처럼 깨질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수원은 이에 대해 설득력있는 공학적 설명을 하는 대신, 주민들이 추천한 7인의 민간 전문가와 한수원이 추천한 전문가 3인으로 TF를 구성했다. 이들은 4일 동안 원자로의 안전성에 관해 전체적인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사 기간도 너무 짧았을 뿐 아니라 그 과정도 주민추천 전문가들이 한수원 측 전문가의 설명을 듣는 형태로 진행됐다고 한다. 도저히 안전성 조사과정이라고 볼 수 없는 4일간의 일정 이후 이 TF는 고리 1호기의 안전에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고, 정부는 이를 근거로 재가동에 들어갔다.
재가동을 하기 위한 전 과정에서 ‘민간 전문가 활용방식’이 사용됐다. 소정의 연구비를 받은 민간 전문가들은 며칠 만에 원자로의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경주에서 있었던 방폐장 안전성에 관한 민간 점검단이 보여준 행태 그대로다. IAEA 전문가들의 안전점검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민간 전문가 활용방식은 핵산업계의 여론무마 방식 중 가장 높은 빈도로 사용된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고리원전 1호기 폐쇄를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B)
이와 함께 흔히 사용되는 수법이 ‘보도자료 왜곡’이다. 한수원은 이번에 IAEA 검증단이 내놓은 보고서 중 일부만 선택해 결론을 왜곡한 후 보도자료를 내놓았는데, 이 방식은 방폐장 안전성 점검, 원전 주변 주민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발표에서도 사용됐었다. 그래서 본론과 결론이 서로 다른 괴상한 보고서가 나왔고, IAEA의 경우에는 IAEA 보고서와 한수원의 보도자료 내용이 서로 달랐다. 고리 1호기는 결국 어떤 정당성도 갖추지 않은 채 재가동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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