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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있으면 해봐.” 길에서 누군가가 훈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이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잔뜩 풀 죽은 채 함구하고 있었다. 모종의 권력이나 권위가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누군가 힘을 내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그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어르신의 입에서 날카로운 말이 튀어나왔다. “아시다시피? 그게 할 말이야? 너희가 아직 어려서 그래.” 젊은이들의 입이 더욱 굳게 닫혔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할 말만 하라는 것도 우습지만, 할 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주체가 발화자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기가 막혔다. 젊은이들의 생각은 입 밖으로 새어 나올 여지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권위주의적 발언에 선뜻 입을 열어 또박또박 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발언을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할 말 있으면 해봐”라는 말은 어쩌면 ‘해서는 안될 말’이었을 것이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인용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민규 기자
지난주 촛불집회 현장에서 저 말을 다시 들었다. 손에 태극기를 든 어른들이 손에 촛불을 든 젊은이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가 이 정도까지 사는 게 다 누구 덕분인데. 뭘 몰라도 한참 몰라서 그래. 어릴 땐 학교 가서 공부를 해야지. 이래서 이 나라에 내일이 있겠어? 어디 할 말 있으면 해봐.” 촛불은 이미 꺼졌다며 더 이상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라는 외침도 들려왔다.
젊은이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입을 모아 외쳤다. “촛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광장은 시민의 것입니다.” 매운바람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촛불은 활활 타올랐다. 단 한순간도 꺼지지 않았다. 말들이 뒤섞여 현장은 내내 뜨거웠다.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이 있었다.
할 말을 제때 한 사람은 속 시원하게 ‘사이다 발언’을 한 사람으로 추앙받지만, 해서는 안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저 가만히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할 말을 제때 잘하는 것만큼이나 해서는 안될 말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해서는 안될 말을 들은 사람은 상처를 받고 의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일할 의지, 공부할 의지, 무엇보다 내일을 향할 의지. 김빠진 사이다처럼 삶의 동력을 상실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할 말은 하는 신문’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신문이 있었다. 그 신문에서 했던 말들이 과연 할 말이었는가? 오히려 해서는 안될 말에 가깝지 않았는가?
소셜미디어에 ‘아무 말 대잔치’라는 이름으로 올라오는 글들은 그저 아무 말에 불과한가? 정말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말의 다른 표정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해서는 안될 말이 권위를 등에 업고 응당 해야 할 말처럼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반대로 할 말을 하지 못하게 막는 분위기는 아무 말이라도 발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낳기도 한다.
다큐 PD 김현우가 쓴 <건너오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어떤 이에겐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단어가 다른 이에겐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정도로 아픈 단어일 수도 있다. ‘바늘’ ‘손가락’ ‘불’ ‘바람’, 이런 평범한 단어들에 세상의 사람 수만큼 많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에게 바늘은 칼날처럼 치명적일 수 있고 또 다른 어떤 이에게 바람은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무시무시한 단어일 수 있다. 장례식장에서 ‘축하’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도, 중요한 시험을 앞둔 이에게 잘해야 한다고 압박하지 않는 것도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려서 잘 모른다는 단정적인 말에 젊은이들의 입은 닫힐 수밖에 없다. 내일을 이야기하며 지금껏 ‘살아온’ 날들을 앞세울 때, 그 말 안에 젊은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은 없다. 어떤 ‘할 말’은 남에게 결코 해서는 안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때의 할 말은 고작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공허한 말일 뿐이다.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 사이에 말을 하는 자와 그 말을 듣는 자가 둘 다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해서는 안될 말은 삼키고 할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때, 비로소 말은 힘을 얻는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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