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검찰은 직접수사권과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기소권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막강한 권한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기소하지 않을 권리’다. 다른 권한은 행사할 때만 그 위력을 드러낸다. 기소하지 않을 권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검찰이 4일 발표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수사 결과는 이를 유감없이 입증했다. 검찰은 이미 구속된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만 재판에 넘겼을 뿐, 봐주기 수사·외압·유착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다른 전·현직 검사들에게는 모두 면죄부를 줬다. 과거 부실수사를 반성하고 바로잡으라 했더니 또 다른 부실수사로 덮은 꼴이다.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이하 수사단)은 김 전 차관을 윤씨와 다른 사업가로부터 1..
수사권 조정안이 신속처리법안에 포함되자 검찰이 갑자기 포문을 열었다. 검찰총장은 외국 방문을 취소하고 급히 돌아왔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진행했던 사법개혁 논의를 정면에서 거부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정부 차원의 논의를 계속했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차원에서의 논의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부 차원이든 국회 차원이든 검찰이 의견을 개진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니 뜬금없는 반발이다.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나서서 검찰의 주장을 경청하겠다고 했지만, 반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떤 관료도 이렇게까지 오만한 적은 없었다.반발하는 내용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동원인지 자원인지 모르겠지만 검찰 주변 인사들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을 거..
현직 부장검사가 검찰총장과 검사장급 고위간부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대국민 고발’을 했다. 한국 검찰 사상 최초일 터다. 2월18일자 경향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는 칼럼을 쓴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이야기다. 임 부장검사는 검사장 3인이 2015년 서울남부지검의 성폭력 사건을 덮었고, 문무일 총장은 이들을 징계·처벌하지 않았다며 “검찰권을 감당할 자격이 없는 검사들을 고발합니다. 주권자 국민 여러분이 고발 내용을 판단하여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더 놀라운 건 그 이후다. 시민 반응은 뜨거웠으나, 검찰은 조용하다. 어떠한 공식 반응도 없다. 검찰 내부망에도 수사관 2인이 글을 올렸을 뿐, 검사의 글은 한 건도 없다고 한다. 임 부장검사는 전화 통화에서 “반응이 전혀 없어 당혹스럽다. 검찰 조직의..
“너무 무서워서 장독대 뒤에 숨었어요.” 검찰의 성폭력 사건 보도 이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이 있다. 10여년 전, 한 단체가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대회’라는 것을 열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앞자리에 섰다. 그녀는 초등학생 시절 동네 아저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대단히 안 좋은 일이고 부모에게도 말하면 야단을 맞을 것 같았다. 너무나 무서웠던 그 어린 소녀는 뒷마당의 장독대로 기어들어가 한참 동안 부들부들 떨었다며 울먹였다.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에 그녀는 자신의 말을 들어줘서 고맙고, 함께 울어줘서 곪은 상처가 일부 치유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의 성폭력 사건을 접하면서 분노가 치밀었지만 다른 한편 착잡했다. 언론이 대대적으로 ..
검찰이 과거 시국사건 6건에 대해 직권으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6년부터 4년 동안 재심을 권고한 73건 중 당사자 일부가 재심을 청구해 이미 무죄판결이 내려진 사건들이다. 함께 기소됐던 공동 피고인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는데도 아직 신청하지 않은 18명을 대신해 재심을 청구해주는 것이다. 검찰이 과거 시국사건에 대해 먼저 재심을 청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찌 보면 재심 청구를 대행해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검찰로 거듭나기 위한 의미있는 걸음이라 평가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취임 초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
강원랜드가 2012~2013년 채용한 신입 사원 518명 가운데 95%인 493명이 국회의원 청탁 등으로 부정 입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채용비리 규모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자신의 비서관 출신을 포함해 10명 이상을 청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당 염동열 의원도 80여명의 인사를 청탁해 20~30명이 채용됐다고 한다. 도박 중독 등의 폐해에도 강원랜드를 설립한 것은 폐광 지역에 일자리를 마련해 서민들 생계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이다. 내국인 카지노를 독점 운영하는 강원랜드의 영업이익률은 40%에 육박한다. 올 상반기에만 3000억원의 수익을 냈고 임직원 연봉이 7000만원 안팎에 이른다. 이런 기업의 일자리가 그동안 권력자나 지역 유지의 자제들로 채워지고 있었..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30일 법정 구속됐다. 당초 2심의 징역 3년형보다 처벌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사필귀정이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대웅 부장판사)는 원 전 원장 재직 당시 국정원이 장기간 조직적으로 정치·선거에 관여했다는 검찰의 기소 내용을 받아들였다.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은 직무 영역에서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정치적 중립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국정원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나 국정원은 막대한 예산과 광범위한 조직을 거느린 핵심 정보 기관이다.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을 잃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
참 하기 싫은 수사였구나. 지난달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기소하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든 생각이다. 전직 대통령까지 구속된 역사적 수사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촐했다. 달랑 9장짜리 보도자료에 특별수사본부 공보 책임자인 서울중앙지검 1차장의 비공개 브리핑이 전부였다. 지난해 11월 최순실씨 등을 기소할 때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직접 발표하는 모습을 생중계까지 했던 것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검찰로서는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입맛에 맞는 수사를 골라 의도대로 끌고 가며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한 과거와 너무 다르다.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의 거센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수사가 시작됐고, 그 수사의 최종 목표가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