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정당성은 “사리에 맞아 옳고 정의로운 성질”을 뜻합니다. 한 집단의 정당성은 사회에서 주어진 몫을 다함으로써 얻습니다. 교사는 학생을 잘 가르칠 때, 의사는 환자를 돌볼 때 우리는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하죠. 학생 성 학대, 의료사고가 불거질 때마다 정당성이 약화함은 당연합니다. 군대의 정당성은 특별합니다. 그들이 가진 폭력의 독점 때문이죠. 외적의 위협을 막는 대신 가공할 살인 무기를 지니고 거대한 조직을 유지할 정당성을 가집니다. 그 정당성이 흔들리는 순간 군은 소임을 하기 힘들어질 뿐 아니라 사회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존재 이유마저 의심받을 수밖에 없죠. 1950년 여름 한국군은 치욕적 패배를 경험했습니다. 불과 며칠 만에 서울을 적군에 내주었고..
요 근래 정치권의 동성애 호들갑을 보노라니 좀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다. 마치 오랫동안 외항선이라도 타다 내린 것 같다. 언제부터 동성애 문제가 고위 공직자의 역량과 자질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됐나 싶어서다.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라고 거칠게 다그치는 국회의원, 곤혹스러운 표정의 대법원장 후보자,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에 등장한 황당무계한 ‘후미에’(17세기 일본 에도막부가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을 국민들. 이미 후미에의 피해자도 나왔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졸지에 ‘동성애 옹호자’로 몰렸다. 군형법의 ‘군대 내 동성애 처벌’ 규정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위헌 의견을 냈던 것이 동성애 찬성으로 ‘둔갑’한 것이다. 모호한 법으로 피해 보는 ..
노예처럼 일했다는 공관병 때문에 다시 한국군의 존재 이유와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모 기관과의 공동연구로, 군 복무 중인 청년부터 월남전 참전 용사까지, 6개월 공익근무요원 출신부터 전방 특수부대 출신까지 열댓명의 남자들과 ‘군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경험의 개인차가 무척 크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래도’ 대한민국 군대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인정했다. 군대 경험이 자기 생애에서 긍정적 기능을 했고, 후배나 아들도 군대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작전권 문제는 물론 한국군의 온갖 적폐와 말도 안되는 가혹행위·인권침해를 앎에도 말이다. 그래서 ‘그래도’를 좀 더 파고드니 그런 답은 역설이나 일종의 결과론이었다. 무척 괴롭고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군대는 가족과 학교밖에 모르던 청년에게 팔도..
지난 5월24일, 한 해군 대위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민간인 친구에게 “상관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말한 사실이 확인됐고, 자살 다음날 바로 상관인 대령은 준강간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해군의 대응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고 거침이 없다.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생각하면 해군의 신속한 대응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뭔가 미심쩍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보도에 따르면 자살한 대위가 발견된 경위는 ‘연락이 끊긴 채 출근을 하지 않아 동료들이 대위의 집을 찾아갔다가’이다. 단순히 연락이 안되고 출근하지 않는다고 ‘동료들’이 집까지 찾아가는 일은 아무래도 상식적이지 않다. 유서도 없었는데 민간인 친구에게 털어놓았다는 얘기만으로 가해자를 특정하고 단..
1948년 탄생한 국민개병제가 위협받고 있다.‘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종이 국민개병제를 좀먹고 있다. 문제의 중심에 합법적 병역면탈이 있다. 병역면탈의 경우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2010년 천안함 사태 때 청와대 지하벙커 상황실에 모인 참석자 대부분이 병역면제자란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위기를 관리할 핵심 인사들이 그러하니 과연 누가 전선을 제대로 지킬 것인가. 그런데 병역면탈은 사회 전반의 병폐다. 군 면제자들은 ‘신의 자식’으로 불린다. 지금도 지도층의 병역문제는 인사청문회마다 단골 메뉴라 국민개병제는 가히 위기 수준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렇다면 우리 군 내부는 어떤가. 오십보 백보다. 왜 그런가. 병사들을 ‘군복 입은 시민’으로 대하자는 인식이 낮아 그..
우리 헌법은 대통령을 국군의 통수권자로 규정한다. 대통령은 군인 아닌 민간인이며,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식민지, 분단과 전쟁, 장기간의 군사독재 탓에 우리는 ‘별짜리’와 그 출신이 군에 관한 주요 결정을 사실상 독점하는 심각한 폐해에 대해 여전히 둔감하다. 전쟁에 대비하는 특수조직이니만큼 문민통제가 직업군인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1993년 출범 직후 김영삼 대통령은 육군의 사조직 ‘하나회’ 청산을 단숨에 해치우면서 군 혁신의 장기적인 전망과 계획 수립이라는 후속조치에는 소홀했다.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응당한 조치였지만, 새 시대에 부응할 문민통제의 모범 사례는 아니었던 셈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튼튼한 상비군은 평화 유지를 위해 필수적..
얼마 전까지도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꾸었다. 까맣게 잊었다고 믿은 중대장이 어제 만난 사람처럼 생생하게 내 앞에 나타나 네 전역은 행정 오류였으니 다시 입대해야 한다며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재입대가 얼마나 부당한지를 항의했으나 희한하게도 그런 꿈을 꿀 때면 어디에 항의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했다. 군대 이야기만큼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또 없으나 나는 이 글에서 사소한 사연 하나를 풀어 볼 생각이다. 나는 강원도 철원에서 복무했다. 당시 복무기간은 26개월이었고 또래의 친구들보다 서너 해 늦게 입대했다. 훈련병 시절이 끝나고 부대를 배치받았다. 신병 생활은 고달팠다. 선임병들이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일상적으로 폭언을 퍼붓고 얼차려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행동과 생활의 제약을 가한 탓이었다. 계급장 ..
세월호 참사 이후 10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밥을 굶는다. 친구를 잃은 아이들은 뙤약볕 아래 행진하였다.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며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돌아온 일상에서 우리를 기다린 악마는 바로 윤 일병 사망사건이 드러낸 군대 내 병폐였다. 세월호의 적폐 앞에 무기력하게 눈물을 흘려야 했던 이 시대의 부모들은 군대 내 병폐의 악마 앞에 다시금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일상이 전개되고 있다. 민주국가의 군대는 주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국민은 군대를 무장시킨다. 국가안보의 최후 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한다. 국민의 군대는 국가 안보의 처음이자 끝이다. 적대적 봉쇄와 협력적 포용을 해야 하는 야누스적인 북한과 대면하고 있는 우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