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문학의 오래된 소재이다. 누군가가 떠날 때 아쉬움에 술을 마시고, 격려와 당부의 말을 건넨다. 차마 못한 말을 글로 적으면 시가 된다. 고려 시인 정지상은 ‘송인(送人)’에서 “대동강 저 물결은 언제나 마를 건가/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해주니”라고 헤어짐을 노래했다. 이별시의 절창이다. 김소월은 ‘진달래꽃’에서 헤어짐을 앞에 두고서 꽃을 뿌리겠노라고 말한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역설의 시다. 가장 슬픈 이별은 가족과 헤어지는 일이다.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외직을 떠돌던 소동파는 추석날, 술에 대취해 동생 소철을 떠올린다. 떠오른 보름달에 동생의 얼굴을 겹쳐 보면서 “달에게 그 무슨 이별의 한(恨) 있으랴만/ 어찌하여 늘 이별해 있을 때만 둥근가”(‘수조가두’)라고 달을 원..
이산가족의 통한을 역사로 증언하는 흑백의 사진이 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된 1985년 9월 ‘남북한고향방문단’ 행사 때다. 마지막 상봉을 마치고 다시 헤어져야 하는 순간, 버스 차창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을 마주한 남북 형제의 절절한 모습이 반도를 울렸다. 당시 언론들은 이 장면에 ‘언제 다시 만나나 … 차라리 만나지 말 것을’이라고 가없는 회한을 전했다. 그랬다. 30여년 전이니 ‘직계’ 상봉이 대부분이었던 이산가족들은 너무도 짧은 만남 뒤에 또다시 생이별을 해야 하는 무참한 현실 앞에 무너졌다. “아바지, 아바지, 또 만날 수 있게 오래 사시라요”라는 속절없는 인사만 가득했다. 팔순의 어머니는 북으로 돌아가는 아들에게 “이 세상에서는 만나기 힘들 것이니 하늘에서 다시 만나 행복하..
중학교 수학여행을 못 갈 뻔했다. 집안에 우환이 있어 수학여행을 가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을 때였다. 그때 아버지가 한 말이 있다. “너무 낙담하지 마라. 네가 크면 금강산도, 백두산도, 다른 나라들도 다 가볼 수 있을 텐데….” “정말요?” “그럼!” 설마 했다. 학교에서도 무시로 ‘무찌르자 공산당’의 구호를 외치던 시절, 언감생심 어떻게 북한 땅을 밟아본단 말인가. 통일이라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어린 생각에 전쟁이라도 한 번 더 치르자는 말인가 싶기도 했다. 뒤늦게 알았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 아버지는 수학여행을 금강산으로 갔었다. 돌아가시고서야 빛바랜 낡은 앨범에서 동무들과 금강산에서 찍은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가 1972년. 전쟁 후 20년이 채 ..
북한 실세 3인방의 ‘방남’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잃어버린 7년’만큼이나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다. 이 가운데에는 중단된 지 6년을 넘긴 금강산관광도 빼놓을 수 없다. 인천 아시안게임 역시 어려운 숙제를 안겨줬다. 대회 유치 당시 인천시장이었던 안상수는 “20조원의 경제효과를 유발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결과는 2조원이 넘는 빚잔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북한 응원단이 왔다면’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그리곤 묻는다. 3년4개월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은 다를 수 있을까? 강원도 전역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은 인천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대회 예산으로 모두 9조원가량이 투입될 예정인데, 이 가운데 인프라 예산이 7조원 가까이나 된다. 인천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