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다. 공직자들이 유관 기관들로부터 경비를 지원받아 해외출장을 다니는 게 만연한 관행임이 확인됐다. 심지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유관 기관으로부터 부당하게 경비를 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온 공직자가 261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권익위가 범정부점검단을 구성해 ‘김영란법’이 시행된 2016년 9월부터 올 4월까지 전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해외출장 실태를 조사한 결과, 공직자들의 ‘접대성’ ‘갑질’ 해외출장이 여전하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실상을 보면 더욱 놀랍다. 자신이 감독하는 피감기관이나 산하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온 공직자가 96명에 이른다. 여기에는 국회의원만 무려 38명이 들어 있고, 국회의원 보좌진 및 입법조사관 16명..
법무부·대검 합동감찰반은 7일 ‘돈봉투 만찬’ 파문의 당사자인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면직을 청구했다. 이 전 지검장은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수사의뢰됐다. 나머지 참석자 8명에 대해서는 수동적으로 참석한 점을 고려해 모두 경고 조치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고 한다. 말이 면직이지, 이미 사표 낸 사람을 붙잡아 놓고 조사한 끝에 결국 조직을 떠나라고 한 것뿐이다. 2년 이후엔 정상적으로 변호사를 개업할 수 있다. 경고는 엄격하게 말해 징계도 아니다. 감찰반 22명을 동원해 20일 동안 조사한 결과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제 식구를 감싼 조사 내용이다. 검찰은 처음 이번 사건이 불거지자 “밥 먹고 소통한 게 뭐가 문제냐” “통상적인 관행”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반..
어느 학생이 연구실 문을 밀고 들어온다. 그 학생은 학사경고가 누적되어 제적의 위기를 앞두고 있으며, 지도교수로 배정된 내가 소견서를 쓰게 되어 있다. 서울대가 아니라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연히 맞닥뜨린 전공이 적성에 안맞을 수도 있고,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하던 공부가 지겨워졌거나, 모든 것을 찾아서 해야 하는 ‘대학’이라는 거대한 제도에 적응하기에 실패했거나, 갑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에 짓눌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통속적이게도 그 학생의 손에는 캔커피 하나가 부끄럽게 들려 있다. 그러나, 나는 느닷없이 국가의 공권력이 그 학생과 나 사이에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나는 우리의 관계가 ‘직무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밖에 없으며, 그 캔커피를 받는 것이 위법인지, 그리고 ..
2015년 1월, 임신한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산 뒤 길을 건너던 남자가 뺑소니차에 치여 숨졌다. 소위 ‘크림빵 뺑소니 사건’이다. 범인은 도주했다가 수사망이 좁혀지자 자수했는데, 그는 한사코 ‘사람을 친 것을 몰랐다’라고 주장했다. 술에 너무 취해 정신이 없었다는 게 그의 변명이었다. 사고 직후 그가 골목길에 들어가 한참을 숨어 있었다든지, 정비소에 가는 대신 직접 부품을 구입해 부서진 차를 고치려고 한 일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사람을 쳤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가 시종 ‘몰랐다’라고 주장한 이유는 그편이 뺑소니보다 형량이나 사회적 비난이 작을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최순실 의혹이 불거진 지난 한 달여 동안,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몰랐다”이다. 청와대 경..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허탈감에 빠졌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교사는 제자가 주는 캔커피조차 부담스럽고 공무원들은 지인과의 일상적인 만남도 기피하는 상황이었다. 공적 영역을 뛰어넘는 초법적인 세계가 실재하고 있었음이 확인되면서 평범한 국민들의 분노와 상실감은 더욱 커져 간다. ‘한국은 샤머니즘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면서 국가 이미지는 추락하고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쳤다. 한식 세계화 사업을 위해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을 지원받은 미르재단의 설립 취지가 무색해졌다. 최순실의 권력이 독버섯처럼 확장되었던 음습한 공간들은 ‘잘나가는’ 강남 사모님의 일상생활 세계, 그들의 권력 공간과 묘하게 겹친다. 언론에 등장하는 최순실의 주요 활동 무대는 강남 사모님의 마법이 시작되는..
▲ 세월호 참사, ‘관피아’ 문제 드러내 공직자 가족 관련 직무 제한 법안 정치·언론계 ‘연좌제’ 억지 주장에 3년7개월 만에 ‘누더기 법’ 통과 1950~1960년 미국 연방정부 내에서 트루먼과 아이젠하워가 지명한 고위 공직자들이 연루된 몇 건의 이해충돌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러자 1960년 뉴욕시 변호사협회는 시대에 뒤떨어진 윤리규정 때문에 이해충돌 문제를 제대로 막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의회와 대통령이 주요 윤리규정들을 개정해 연방정부의 윤리시스템을 조사하고, 선물 수수나 외부 고용 등 이해충돌 방지와 관련한 새로운 윤리규정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권고에 따라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윤리규정들을 포함하는 연방정부의 윤리 프로그램의 효과성을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마..
마침내 한국 사회의 부정과 비리의 사슬을 끊어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제정되었다. 2011년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 초안을 내놓은 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뤄낸 3년9개월 만의 결실이다. 원안에서 일부 후퇴된 부분이 있지만, 직무관련성 여부와 상관없이 금품수수를 금지한 취지가 관철됨으로써 강력한 반부패법의 정신을 살리게 됐다. 당장에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각종 청탁과 접대 문화에 혁명적 변화가 기대된다. ‘김영란법’은 한 번에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넘는 금품을 받은 경우는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하도록 했다. 금품에는 돈·물품 말고도 접대와 향응, 편의 제공 등 유·무형의 이득이 모두 해당된다. 법의 적용을 받는 ‘공직자’에는 선출직·임명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