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며칠 남지 않았다. 헌재는 임신 중지를 결정한 여성과 여성의 요청에 의한 의료인의 행위를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리를 침해하는지 판단한다. 판결의 핵심은 ‘낙태’ 행위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맥락에서 불가피하게 임신을 중단한 여성을 국가가 처벌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런데 판결을 앞두고 일부 종교계는 ‘낙태죄’ 존치운동을 벌이며 ‘낙태죄’가 없어지면 ‘성 문란’과 ‘무분별한 낙태’가 늘어날 것이라 주장한다. 도대체 누구의 ‘성 문란’이 문제이며, ‘무분별한 낙태’란 존재하기는 하는가? 재미있는 것은 이런 주장이 1953년 일본의 형법을 본떠 형법에 낙태죄를 만들 때도 나왔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충분한 책..
“생명은 소중한 거니까 서명해줘요.” 몇 달 전 주말 아침, 집주인이 문을 두드리며 서명을 요청했다. 낙태죄 폐지에 반대한다는 서명에 동참해달라는 것이다. 단호하고 분명한 이유 앞에 동거인의 난처한 음성이 들린다. “아, 그러니까… 저는 의견이 다른데요.” 집주인은 의아하다는 듯 재차 생명의 소중함을 설득하다 포기한다. 우물쭈물 거절하는 파트너가 답답해 뛰쳐나가려는데 몇 가지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세입자에 대한 집주인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싶지는 않았다. 안정된 주거에서 안심하고 살 권리와 낙태죄 폐지가 이렇게 맞닥뜨릴 줄이야…. 법적 혼인 여부, 성 경험, 낙태 경험 등을 어떤 사회적 기준으로 어떻게 해석할지 내 마음엔 불안이 지펴진다. 소중하다는 그 생명은 어떤 생명일까? 2012년 헌법재판소는 ..
제럴딘은 10년 전 친구의 소개로 한 남성을 만났다. 필리핀인 제럴딘은 어학원 영어교사였고, 남성은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와 수학 교사로 일했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됐다. 하지만 제럴딘이 임신을 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다. 임신 소식을 알게되자, 남성은 한국으로 떠났다. 아들 제라드는 아버지 없이 여덟 살까지 자랐다. “아빠는 왜 없을까”라는 의문은 제라드의 정체성에 큰 구멍으로 남았다. 모자는 한국으로 왔다. 낯선 나라의 국회 앞에 서서 피켓을 들었다. “코피노에게 행복을 찾아주세요.” 지난해 한국일보에 소개된 사연이다. 제라드는 ‘코피노(Kopino)’다.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일컫는 코피노는 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코피노 아이들이 아빠를 찾습니다’란 ..
청와대가 형법상 낙태죄와 관련해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조국 민정수석은 26일 시민 23만여명의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동영상 답변에서 “태아의 생명권은 소중한 권리이지만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불법 시술 양산 및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 원정 시술 등의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낙태죄 개정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본다. 현행 형법은 자기 낙태 및 의사 등의 낙태 시술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공 임신중절은 모자보건법상 ‘강간에 의한 임신’..
가톨릭 국가에서 낙태는 중죄(重罪)에 속한다. 낙태를 죄악시하는 폴란드 정부는 지난해 10월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경우라도 낙태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최대 징역 5년형에 처할 수 있는 ‘낙태금지법’ 시행을 추진했다. 그러자 여성들이 들고일어났다. 검은 옷을 입고 광장에 모여 “나의 몸에 자유를 달라” “나의 자궁은 나의 선택”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 것이다. 폴란드 정부는 낙태금지법 시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낙태를 금지하는 국가의 여성들은 임신중절이 가능한 지역을 찾아간다. 12주 이내의 낙태만 허용하고, 의사 처방전을 받아야 ‘미프진’(자연유산 유도제)을 구입할 수 있는 미국에선 임신여성들이 평균 27㎞의 낙태여행을 한다는 통계가 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연간 700여명의 임신여성들이 잉글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