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된 유대인을 기리기 위해 미국 워싱턴 DC에 세워진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일 년에 딱 이틀, 유대교가 정한 속죄일인 욤 키푸르와 기독교의 축일인 크리스마스에만 문을 닫는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유난히 깊은 침묵에 빠져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 4000켤레의 낡은 신발이 뒤죽박죽으로 켜켜이 쌓여 벽을 이룬 곳. 성인 남자의 출근용 구두, 젊은 여성이 신었을 법한 펌프스, 소년의 운동화,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아이가 신었을 법한 꼬까신…. 폴란드 마자넥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들이 도착하자마자 벗어 나치 군인에게 압수당했던 것들이다. 신발 더미에서는 신발 주인의 체취 같기도 한 고무냄새가 스며 나와 관람객을 몸서리치게 만든다. 멍해진 관람객들을 돕는 것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노년의 자원..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한낮에도 짙은 어둠을 느끼게 하며 사람들을 위축시킨다. 피조사자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건, 육중한 군청색 철문이다. 그곳의 대문은 여닫이와 미닫이 두 개의 구조로 되어 있다. 내부는 들여다볼 수 없다. 문을 보는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은 위축을 경험하게 된다. 5층 조사실로만 통하는 원형 계단은 사람의 공간감각을 빼앗아 길을 잃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 공포감을 준다. 한여름에도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복도를 거쳐 들어가야 하는 조사실에는 침대와 욕조, 방음벽에다 폐쇄회로(CC)TV 카메라까지 설치되어 있다. 남영동의 조사실은 하나의 공간이 인간을 얼마나 초라한 존재로 전락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문짝부터 조사실까지 전체 건물이 유기적으로 배치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