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문재인’과 ‘문재인의 조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이른바 평행이론에 새로운 장이 추가될 판이다. 13년을 사이에 두고 민정수석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 물망에 오르면서다. 법무부 장관 기용설이 제기된 과정, 배경, 논란마저 닮은 구석이 적잖다. 거슬러 2006년 8월, 새 법무부 장관에 석 달 전 청와대를 나온 문재인 전 민정수석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에 여의도가 발칵 뒤집혔다. 도덕성이나 역량, 대통령과의 소통 등 하자가 별로 없는 ‘문재인 법무부 장관’을 비토한 건 야당만이 아니었다. 측근 인사, 선거 중립성 등을 문제 삼으며 “정신적 테러” “오만의 극치”라고 공세를 편 한나라당 못잖게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불가론’이 터져나왔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본..
선거제도를 바꾸자, ‘노무현의 꿈’과 ‘노회찬의 꿈’이 강렬히 마주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에 정치생명을 걸다시피 했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개편할 수만 있다면 권력을 내놓겠다(대연정)는 제안까지 했다. 자서전 에는 선거제도 개혁의 열망이 절절히 담겨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새기기를 바라며 주요 대목을 옮긴다. “대연정 제안은 완전히 실패한 전략이 되고 말았다…그렇지만 대연정을 해서라도 선거구제를 고치려고 욕심을 부렸던 이유만큼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1등만 살아남은 소선거구제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역대결 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노 전 대통령의)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 노무현의 이상은 높았다. 꿈을 이뤄내는 게 정치다. 정치는 주어진 환경에서, 여러 난관을 물리치고,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힘은 부족하지 않았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한 최초의 민주정부였다. 참여정부는 그 힘을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과거사법·언론개혁법·사립학교법)에 쏟아부었다. 민생과는 거리가 멀다고 시민들은 느꼈다. 파열음이 터져나왔다. 보수언론을 포함한 보수세력은 반노무현 전선을 구축하고 총결집했다. 돌에 걸려 넘어져도 노무현 탓이라고 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노무..
대통령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를 가장 가까이서 줄곧 지켜본 사람이다. 분명히 그 경험은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그 자신도 그 실패의 경험을 교훈으로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실패’의 자산목록에 노동은 없는 것일까? 그는 과연 노무현 정부의 노동에 대한 실패에 어떤 입장일까?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매우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업무지시가 비정규직 관련이었고, 비정규직 비율(곧 정규직 전환 비율로 해석될)을 적은 전광판을 집무실에 설치하기도 했다. 그리고 공공부문 중심으로 일자리를 수십만개 만들기 위해 무려 10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근데 여기에 노동은 없다. 연일 일자리와 비정규직 문제가 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난 지 만 8년이다. 9년 만의 정권교체로 3기 민주정부가 출범한 올해는 어느 때보다 그 의미가 남다르다. 추도식이 열린 23일 김해 봉하마을에는 역대 최다 인파가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우리가 함께 아파했던 노무현의 죽음은 수많은 깨어있는 시민들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끝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고 했다. 모두 공감할 만한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했다. 지난겨울 1700만 시민은 정의와 민주주의가 우선하는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촛불을 들었고, 기어이 불의의 시대를 종료했다. ‘노무현정신’은 소통과 ..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처리를 앞둔 그날 윤영철 당시 헌법재판소장과 출입기자단의 오찬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날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1년에 한 번 있는 정례 기자간담회인데 몇 달 전에 잡힌 일정이라 어쩔 수 없었다. 오전에 서초동 검찰 기자실에서 TV로 중계되는 국회 상황을 보면서 설마 탄핵안이 통과될까 했다. 앞서 많은 여론조사에서 탄핵 반대가 찬성보다 두 배 이상 많다는 결과가 나온 터다. 야당이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무리를 하겠는가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곤 헌재가 있는 재동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한강 다리를 건너는 순간 라디오에서 탄핵안이 통과됐다는 긴급 뉴스가 흘러나왔다. 기자들의 휴대전화가 일제히 울어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
지난 칼럼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의 ‘2등 경쟁’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한 달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 시간과 순위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2017년 대선 정국이 안희정으로 요동치고 있다. ‘공적 됨됨이.’ 십수년간 지켜본 정치인 안희정에 대한 주관적 평가다. 1990년 3당 합당 후 이념도 정치도 헌 옷처럼 느껴져 여의도(이철 의원 비서관)를 나설 때, 1993년 친구 이광재와 서울 연신내 허름한 술집에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를 도원결의 할 때, 2002년 노무현 정부 출범 후 홀로 멍에를 짊어졌을 때도 안희정은 조직과 대의명분이 우선이었다. 2007년 대선 패배, 2008년 총선 공천 배제 땐 ‘폐족’이란 말로 친노를 일으켜 세웠다. 스스로의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혁명을 결코 ..
청와대가 대통령의 독서목록을 공개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였다. 책 읽는 대통령을 부각시키려는 뜻도 있었겠지만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폭넓은 독서편력으로 유명했다. 3만여권의 장서를 보유했던 그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면 감옥에라도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고, 모퉁이에 글을 적었다는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두고 읽어야 할 책으로 갤브레이스의 , 피터 드러커의 , 박경리의 , 변형윤의 등을 꼽았다. 다독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직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책을 활용해 보수언론에게 “‘독서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발탁해 중용하기도 했다. 를 쓴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 을 펴낸 이주흠 전 리더십비서관이 대표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