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은 라임오렌지 나무를 친구처럼 여긴 아이, 제제를 만난 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라임오렌지라는 게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했지만 알 방도가 없었다. 바나나도 아파서 병원에 입원이나 해야 구경할 수 있었던, 바나나 우유는 목욕탕에 가서 억센 엄마 손에 붙잡혀 온몸이 새빨개지도록 때를 밀린 뒤에야 겨우 얻어먹던 시절이었으니, 라임오렌지 나무는 ‘유니콘’ ‘피닉스’ 같은 상상 속 동물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처음으로 라임오렌지를 봤을 때 제제의 친구 밍기뉴가 레몬을 닮은 평범한 과일이라는 게 조금 실망스러웠다는 기억이, 그가 초등학교 때 를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고 얘기하는 걸 듣다 보니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독서 토론을 하는데 친구들이 그 책을 가정폭력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했을 ..
공동체 안채의 방 이름을 볼 때마다 내 빈약한 상상력을 드러내는 것 같아 좀 민망하다. 크기와 위치에 따라 그냥 큰방, 골방, 작은방, 더 작은방이라고 이름 지은 탓이다. 이에 비해 퇴계실, 화담실, 다산실 등 한자 문패가 붙은 사랑채는 지적으로 느껴진다. 역시 철학자가 지은 이름은 다르다. 좌식으로 꾸며진 안채 골방에는 대체로 좌식에 맞는 공부 모임이 든다. 좌선과 함께 공부하는 강의, 라틴어로 성경 읽기, 희랍어로 낭송하기, 읽기 등이 그것이다. 큰방이나 작은방에 드는 모임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다. 참여자의 수에 따르는 것이다.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는 60~70개의 공부 모임 중에서 큰방에 드는 모임은 여섯 개. 경쟁률이 10 대 1이나 되니 큰방에 드는 공부 모임으로 인문학의 흐름이랄까, 유행을 감..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이제 완연한 가을인 듯싶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말들 중에 독서의 계절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에 따르면 가을은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고, 따라서 여느 계절보다 많은 이들이 책을 가까이하며 지낼 것 같다. 하지만 가을에 오히려 책 판매량이 줄어든다는 서점가 통계가 말해주듯이 가을이라고 해서 책 읽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책 읽는 이들의 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201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량은 9.2권으로, 2011년에 비해 0.7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책 읽는 이들의 수는 줄어드는 것일까? 나날이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등장으로 굳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