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업은 땔감 장사입니다. 이번 매서운 겨울 추위에 땔감을 지고 나르던 튼튼한 소가 갑자기 빙판에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조선 후기의 공문서 서식 모음이자 공문서 작성 참고서인 의 한 대목이다. 민원인은 “우러러 호소”했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소를 잡게 해달라는 것이다. 관아는 다리 부러진 소는 잡되, 가죽은 관아에 바치고 고기는 팔아 송아지를 사라고 처분한다. 바로 뒤로 아픈 사람을 위해 소를 잡게 해달라는 청원서가 예시되어 있다. “의원은 ‘반드시 우황을 복용하고서야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금(牛禁) 주금(酒禁) 송금(松禁)의 세 가지 법은 실로 나라에서 금하는 것이라 감히 우황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금은 소 도축 금지령이고, 주금은 금..
1인 가구 시대, 혼밥족을 위한 공간. 바로 편의점을 빗댄 말이다. 어느 순간 거리마다 편의점이 없는 곳이 없다. 너무 많다 보니, 있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편의점은 정말 다양하다. 도시락과 같은 제품부터 택배와 은행 그리고 세탁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다. 흡연자 절반 이상은 담배 구입을 위해 편의점을 찾는다. 그만큼 편의점은 우리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를 잡았다. 편의점은 언제부터 우리 주위에 자리 잡았을까. 1989년 5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물건을 파는 가게가 서울 송파에 생겼다. 당시 언론은 ‘구미식 구멍가게’ ‘심야 만물 슈퍼’란 별칭을 붙여 소개했다. 30년 전 편의점의 시작이었다. ‘편의점 왕국’ ‘편의점 나라’로 불리는 일본은 197..
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사연을 품고 있다고 했던 톨스토이의 글을 흉내 내자면, 명절 한국 가정의 모습 또한 불행의 디테일은 다르지만 행복의 표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과일 박스와 선물 꾸러미를 들뜨고 그리운 마음과 함께 실은 출발은 산뜻하다. 극심한 정체가 계속되고 ‘가다 서다’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 오면 그것은 그것대로 왠지 우리가 헤쳐가야 할 숭고한 고난의 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중간중간 부모님께 보란 듯 정체 상황을 보고할 때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우리가 갑니다’라는 생각도 들고, 1년간 다하지 못했던 효도를 속죄하고 빚을 탕감받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닿은 고향집의 문턱에서 반가움을 짐과 함께 부리고 나면, 이제 목표는 그 집을 탈출하는 것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