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투(me too)’ 운동이 현상적으로는 구체적인 ‘실명 주체(개인)’를 호명해 비판하더라도, 누군가 개인을 징치(懲治)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지향만 있다고 오해한다면, 교통신호를 무시했거나 불법 유턴하다가 재수 없게 걸린 사람의 변명거리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미투’ 운동에 대한 불편함을 이야기하며, 남성 또는 문단 전체가 그런 것이 아니란 식의 호도와 볼멘소리에도 반대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을 비롯한 구조적 모순과 일상의 민주주의가 체현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무는 현실을 개인의 실수나 잘못으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일부 예술가와 비평가들은 예술의 초월성에 주목한 나머지 예술이 역사와 지역의 맥락과 무관한 초월적이고 추상적인 가..
# 문단_내_성폭력 1차 파동이 일던 2016년 가을, 한 여성 평론가에게 물었다. “요즘 문단 분위기 어떻습니까?” 매우 신중한 성격인 그녀는 약 5초간 침묵하다가 “문단이란 걸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녀의 입에서 그런 단호한 말이 나오는 걸 들은 건 처음이었다. 어린 고교생 작가 지망생까지 성폭력의 희생자였음이 드러난 때였다. 문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없앨 수도 있고 없앨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제도로서의 문단은 등단과 문학상, 문예지와 문학가 단체 등을 아우른 체계를 뜻하고, 비물질적인 측면에서 문단이란 문인들의 네트워크, 또 비평적·예술적 규범과 권위로 이뤄진 무정형의 공동체 같은 것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인 문예지를 운영하는 출판사와 그 주변의 작가·비..
소설가 김명순(1896~1951)은 1917년 단편 ‘의심의 소녀’를 발표하며 등단한 한국 최초의 여성 작가다. 1920년대 문예지 ‘창조’의 동인으로 활동했던 김명순은 문학적 재능이 탁월했던 작가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김동인·전영택·김기진 등 당대의 유명 남성 작가들에 의해 ‘퇴폐 여성’으로 낙인찍히며 문단에서 사장됐다. 김명순은 소설 를 통해 일본 유학 시절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자 김기진은 김명순에게 “성격이 이상하고 행실이 방탕하기 때문”이라며 인격살해를 가했고, 전영택은 “탕녀”라는 극언을 퍼부었다. 당시 김명순에게 남성 작가들은 ‘문단 내 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여성혐오와 성차별은 한국 문단의 뿌리깊은 병폐다. 여성 작가에 대한 성폭력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