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문재인’과 ‘문재인의 조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이른바 평행이론에 새로운 장이 추가될 판이다. 13년을 사이에 두고 민정수석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 물망에 오르면서다. 법무부 장관 기용설이 제기된 과정, 배경, 논란마저 닮은 구석이 적잖다. 거슬러 2006년 8월, 새 법무부 장관에 석 달 전 청와대를 나온 문재인 전 민정수석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에 여의도가 발칵 뒤집혔다. 도덕성이나 역량, 대통령과의 소통 등 하자가 별로 없는 ‘문재인 법무부 장관’을 비토한 건 야당만이 아니었다. 측근 인사, 선거 중립성 등을 문제 삼으며 “정신적 테러” “오만의 극치”라고 공세를 편 한나라당 못잖게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불가론’이 터져나왔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본..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미국의 통상압박에 대해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주장하기 바란다”는 주문도 곁들였다. 미국의 파상적 무역공세에 문 대통령이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상황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는 뜻일 게다. 실제 미국은 지난달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최고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 발동을 시작으로 상무부가 철강수출에 대한 고강도 수입규제 방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권고하는 등 압박의 강도를 높여왔다.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응 주문은 안보와 통상을 분리해 대응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
과거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외교안보 위기를 문재인 대통령이 잘 헤쳐 나갔으면 하는 기대가 높았던 7월11일. 문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이 있다고. 그건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의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고백이었다. 취임 두 달 만의 무력감 토로라니.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음을 강조하려는 과장법이려니 했다. 난제에 직면한 지도자가 한 번쯤 할 수 있는 푸념일 거라고 넘겼다. 두 달이 흘렀다. 한반도 문제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고 그에 비례해 한국은 더욱 존재감을 잃어갔다. 트럼프 추종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펴졌다. 놀랍게도 정부는 이번에도 부인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라인(금지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레드라인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어서 해석이 분분하다. 한반도 문제에서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는다는 것은 외부세계가 북한의 도발을 더 이상 허용치 않고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행동에 나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핵에 대한 레드라인이 초기에는 사용 후 연료봉 재처리에 이어 핵실험이 되었다가 핵실험 이후에는 핵확산 행위가 다시 레드라인으로 설정됐다. 가변적이며, 모호하게 표현함으로써 적에 대한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정치 용어가 레드라인인 것이다.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ICBM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청와대를 방문한 사람들이 대통령을 직접 보는 것 말고 부수적으로 얻는 게 기념품용 ‘대통령 손목시계’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과 친필 사인이 새겨진 손목시계가 처음 제작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다. 1978년 12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참가한 간접투표 방식을 통해 제9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데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여론무마용 손목시계’를 만들어 돌린 것이다. 전두환 정권 때도 기념시계를 만들었는데 스위스 제품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시계 제작기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 제작된 ‘대도무문(大道無門·옳은 길을 가는 데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 시계’는 시민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렸다. 앞면엔 한자 이름(金泳三)을, 뒷면엔 좌우명 ‘大道無門’을 새긴 이 시..
북한에 17개월 동안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풀려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귀국 엿새 만에 숨졌다.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이 웜비어의 죽음을 애도하고 북한의 반인권적 행태에 분노하고 있다. 무고한 관광객을 억류하다 숨지게 만든 북한의 야만적 행태는 어떤 이유로든 합리화할 수 없다. 북한의 반인권적 폭거를 규탄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웜비어 가족에게 조의 전보를 보내 위로하면서 “북한이 인류보편적 규범과 가치인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웜비어의 명복을 빈다. 웜비어는 북한 여행 전까지만 해도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스물두 살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3월 억류된 직후 갑자기 식물인간이 됐다. 북한은 그가 식중독에 걸린 뒤 수면제를 복용했다가 혼수상태에서 빠졌다고 ..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노 전 대통령의)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 노무현의 이상은 높았다. 꿈을 이뤄내는 게 정치다. 정치는 주어진 환경에서, 여러 난관을 물리치고,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힘은 부족하지 않았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한 최초의 민주정부였다. 참여정부는 그 힘을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과거사법·언론개혁법·사립학교법)에 쏟아부었다. 민생과는 거리가 멀다고 시민들은 느꼈다. 파열음이 터져나왔다. 보수언론을 포함한 보수세력은 반노무현 전선을 구축하고 총결집했다. 돌에 걸려 넘어져도 노무현 탓이라고 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노무..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1950년 11월30일 “핵무기 사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아마 이 협박이 북핵 개발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1956년 2월23일 북한이 소련의 드브나 핵연구소에 30여명의 연구원을 파견한 것이 핵개발의 기원일 수도 있다. 그 기원이 무엇이든 북한이 핵개발을 시작한 지 올해 60년이 넘는다. 이 60여년은 한마디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핵 대장정의 시기였다. 때로는 경제붕괴 상황에 직면하고, 때로는 선제공격의 위험이 닥쳐도 중단 없이 행진한 시간이었다. 오랜 고립과 제재를 견디고, 온갖 난관을 헤쳐온 끝에 드디어 핵 보유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북한이다. 제재를 더 강화하거나 추가한다고 핵 국가의 꿈을 포기할 리 없다.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