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이 틀림없어. 평일 아침에 흙 묻은 등산화를 신고, 허름한 배낭을 멨다. 게다가 버스비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분명 간첩이야. 저걸 어떻게 신고하지? 가다가 파출소 앞에 차를 세워야겠다.’ 1970년대가 아니었다. 1987년 민주화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86년이었다. 나는 초등학생도 아니었다. 군대까지 다녀온 스물아홉 먹은 멀쩡한(?) 청년, 게다가 버스 운전사였다. 그런데 아침에 내가 모는 삼화교통 333번 버스에, 어릴 적 반공 세뇌 교육으로 배운 그런 간첩 행색의 남자가 탔다. 나는 룸미러로 그자를 훔쳐보면서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파출소에 버스를 대고 얼른 뛰어가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이 와서 조사해 보니 간첩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었다. 부끄러웠다. 이렇게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요..
대통령은 거짓의 가면을 쓰고 ‘망국의 춤’을 췄다. 비선 실세와 문고리 3인방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경제정책이 아닌 ‘기업 목조르기’를 설계했다. 일부 고위 관료들은 권력놀음에 취해 ‘최순실 부역자’를 자처했다. 재벌은 부패한 정권에 뒷돈을 대며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런 지난 4년은 야만의 시절이었다. 박근혜는 거짓으로 무너졌다.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공약부터 거짓이었다. 경제민주화는 취임 6개월도 안돼 폐기됐다. 기초연금·반값 등록금·4대 중증질환 100% 보장 등 복지공약은 파기 또는 축소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엔 틈만 나면 규제완화를 주술처럼 외쳐댔다. “규제는 암덩어리다. 단두대에 올려 규제 혁명을 ..
불과 보름 전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던 검찰이 금명간 박 대통령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순실씨 비위에 관한 언론의 잇단 보도와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100만 촛불 민심이 검찰 수사를 견인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억지춘향 격으로 수사에 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참고인 신분으로 규정한 게 단적인 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 규명보다는 박 대통령에게 가벼운 혐의를 적용해 하루빨리 사건을 털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검찰 주변 얘기를 종합하면 검찰은 청와대와 최씨가 재벌·대기업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에 총 774억원을 거둬들인 행위에 대부분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직권남용죄는 재단 설립 과정에 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