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종목에서 국가대표를 지낸 한 선수는 지난여름을 해외에서 보냈다. 폭염을 피해 출국한 게 아니다. 앞서 그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개혁을 촉구하는 움직임에 참여했다.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전 연맹 부회장)로 대표되는 기득권세력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결국 홀로 외국으로 떠났다. 개인훈련을 하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서야 귀국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컬링 전 국가대표 ‘팀킴’이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그의 딸·사위인 김민정·장반석 감독으로부터 폭언과 사생활 통제,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겨울동화’에 열광하던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컬링계 내부를 아는 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터질 게 터졌을 뿐이라고 했다. 팀킴은 “가족이라 칭하는 틀 안에서 억압, 부당함, 부조리에 불..
배우들을 상습적으로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연극연출가 이윤택씨(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가 1심에서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이번 사건은 이씨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한 것”이라며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이씨가 받고 있는 범죄 혐의가 무겁기도 하거니와, 기소 후에도 반성은커녕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해왔다는 점에서 당연한 판결이다.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으로 수사가 이뤄져 기소된 유명인사 가운데 첫 실형 사례라는 의미도 있다. 양형 못지않게 주목되는 것은 판결 내용이다. 재판부는 기존 성폭력 사건 판결과 달리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을 토대로 유무죄를 판단했다...
차기 국가인권위원장에 최영애 서울시 인권위원장이 내정됐다. 최 내정자는 한국 최초의 성폭력 전담 상담기관인 한국성폭력상담소 설립을 주도하는 등 여성 인권 신장에 힘써왔고 인권위 사무총장과 상임위원을 지냈다.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추천위의 공모·심사를 거쳐 내정된 첫 사례다. 최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절차를 거쳐 임명되면 첫 여성 국가인권위원장이 된다. 역대 인권위원장은 모두 남성 법조인이거나 법학자였다. 최초의 여성·시민운동가 출신 인권위원장 내정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여성 인권위원장이라고 여성만을 강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 전반적인 인권과 민주적 절차에 대해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 취지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성폭력특별법 제정 추진위원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향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는 한국의 미투 운동이 새로운 분수령을 맞았음을 웅변한다. 서지현 검사의 ‘안태근 전 검사장 성추행’ 폭로로 본격화한 미투는 문화예술계로 확산되었으나, 그 파장이 정·관계 등 현실권력의 본산까지 미치게 될지는 불투명했다. 그러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마저 도도한 물결 앞에 추한 맨얼굴을 드러내면서, 미투는 거대한 변혁운동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딛고 목소리를 낸 피해자들이 한국 사회의 위선과 폐습을 폭로하며 기득권 이데올로기를 깨부수고 있다. 더 이상 성역은 없다. 안 전 지사의 비서 김모씨가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다. 지난 5일 JTBC에 출연한 김씨는 지난해 6월부터 8개월 동안 안 전 지사로부터 4차례 성폭행당했고 성추행도 수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