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 이후, 여기저기서 기대와 불안이 섞인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에는 일부 의사단체 회원들이 모여 건강보험 개편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전면 비급여를 철회하고 의료수가를 올려달라는 이들의 주장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결국 이번 일부 의사단체의 ‘투쟁’ 역시 성공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지난 100년간 한국 의사 사회가 이렇게 늘 ‘지는 싸움’만을 해왔다는 것이다. 한국 의사 사회는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를 시작할 때 관행 수가의 55%에 불과한 낮은 수가를 채택한 것이 모든 문제의 원죄(原罪)라고 이야기한다. 이 주장은 의사 사회 내에서 서로 인용되면서 강화되어 ‘절대 진리’가 되었다. 의료 과정의 불친절, 과잉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79년 만에 처음으로 삼성그룹의 총수가 구속되었다고, ‘삼성 불구속 신화’가 깨졌다고 거의 모든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물론 합법적으로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약간 다른 각도에서 역사를 바라보면, 이미 삼성그룹의 회장은 한 차례 권력에 의해 붙잡힌 후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바 있다. 1961년 5월28일, 일본에서 귀국한 이병철 회장이 박정희 장군을 ‘만났다’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박정희는 쿠데타에 성공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업인들을 ‘부정축재자’로 지적하고 체포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이병철은 일본에 있었고 한 박자 늦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감옥에 갈 줄 알았던 그는, 삼성그룹 비서실에 몸담았던 손병두 전 전경련 상근부회..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한나 아렌트의 이란 책에는 유대인 학살에 가장 악랄하게 가담한 독일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의 수많은 증언들이 기록되어 있다.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법정 재판을 참관하면서 아렌트가 내린 결론은 ‘악의 평범성’이었다. 유대인을 색출하고, 그들을 열차로 호송하는 일을 맡았던 아이히만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심문하고 진술하는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범죄행위를 ‘악의 평범성’으로 정의했다. 아이히만은 검찰의 살인죄 기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나는 유대인이나 비유대인을 결코 죽인 적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어떤 인간도 죽인 적이 없다. 나는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
교육부가 중·고교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바꾸는 방식으로 모든 검정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시도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친일·독재를 미화해 폐기해야 마땅할 국정 역사교과서를 되살리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제 “기존 검정 역사교과서가 좌편향 논란을 부른 것은 검정 절차 탓이라는 지적이 있어 심사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국정 역사교과서와 함께 중·고교에서 쓰일 검정 역사교과서가 집필기준에 미달하면 검정 심사에서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의 큰 틀을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르도록 해 검정 역사교과서를 ‘제2의 국정 역사교과서’로 만들려는 얄팍한 속셈을 드러냈다.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늘 세월은 흐르고 새해가 오지만 올해는 범상한 해가 아니다. 추운 날씨에도 1000만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오직 불의에 분노하고, 나라가 바로 서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이 열망이 이번에는 실현될까? 과거 몇 차례 찾아왔던 호기를 번번이 놓쳐버린 우리가 과연 적폐를 청소하고 새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물론 첫 단계는 박근혜, 최순실 일당의 불법을 밝혀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 정도로 새나라 건설은 안된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한국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신화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잘했는데, 그 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건 틀린 생각이다. 박정희와 박근혜는 일심동..
지난 27일 교육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였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전면 사용을 1년 유예하고, 유예 기간이라도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려는 학교가 있으면 연구학교로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또 새로운 검정교과서를 개발하여 2018년학도부터 국·검정을 혼용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의 ‘품질’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먼저 역사인식의 기초인 사실의 오류가 너무 많다. 필자가 보기에는 근현대사 부분의 경우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에 비해 낫다고 말할 수 없다. 통합 임시정부 때 안창호 선생의 직책이 노동국 총판인데, 통합 이전의 직책인 내무총장을 언급하고 있을 정도이니. 더 큰 문제는 사실과 사실을 연결하는 부분에서 특정한 의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 출신답게 의전을 중요시했다. 그는 골프를 칠 때 앞뒤 팀을 받지 못하게 했다. ‘황제 골프’란 말은 그때부터 쓰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코스 하나를 공짜로 독점하며 골프를 쳤다. 그의 골프 행차 때면 청와대에서 골프장까지 경찰이 배치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황제 테니스’를 했다. 서울시장 때 남산 테니스장에서 3년가량 공짜로 테니스를 쳤던 그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주말에 반값 요금만 내고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황제 테니스’를 즐겼다. 박근혜 대통령은 ‘황제 의전의 종결자’로 불릴 만하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영국 국빈 방문 때 5성급 호텔의 침대 매트리스와 샤워꼭지를 바꾸고, 머리손질과 화장을 위해 객실에 조명등 2개와 스크린 장막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
2012년 1월 TV 프로그램 에 출연한 박근혜가 “저는 대한민국과 결혼했어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냥 얼어붙어 버렸다. 현직에 있던 대통령과 영부인을 총탄에 보낸 경험을 안고 있는 국민들은 그들의 딸 앞에서 연민의 정에 포박당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후광 앞에 그의 지도자적 자질이나 인간됨, 성격 등은 보이지도 않을 것이니 그런 과거를 가진 사람을 이길 수 있는 후보는 없어 보였다. 일상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슬퍼하고 사소한 일에 기뻐하기도 하며 질박하게 삶을 만들어가는 일반적인 국민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삶을 살아온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말 큰일 나겠다는 위기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4년10개월 뒤인 지난 11월 영국 BBC는 박근혜 스캔들을 ‘셰익스피어의 희곡감’이라고 보도했다. 쿠데타로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