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시간 한반도의 허리띠는 녹색이다. 밤에 우주정거장에서 보면 얇디얇은 불빛 선으로 바뀐다. 강원 고성에서 한강하구까지 동서로 248㎞, 남북 철조망 사이 4㎞에 펼쳐지는 비무장지대(DMZ)의 두 색깔이다. 70년 가까이 사람 손길이 끊긴 3억평(907㎢)의 긴 띠는 5929종의 생물과 멸종위기 동·식물 101종이 사는 ‘생명의 땅’이다. “바로 앞에서 마주친 산양이 도망가지 않고 눈싸움을 해요.”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DMZ 탐사 중에 만난 동물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독수리·두루미·황쏘가리가 모여 살고, 호랑이만 없는 원시의 세계다.남북이 유해를 발굴하며 감시초소(GP)·지뢰를 없애기 시작한 DMZ는 가다서다 ‘평화의 땅’으로도 변신 중이다. 한국전쟁 때 동·서·중부 전선에는 북 탱..
가톨릭교회에서는 부활절 후에 ‘엠마오’를 간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10여㎞ 떨어진 마을로 추정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후 예루살렘을 떠나가던 제자 두 명이 길에서 만난 예수를 엠마오에서 비로소 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루카복음 24장). ‘엠마오’는 이 만남을 기념하는 부활 나들이라 하겠다. 올해는 부활절 다음날 천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가 ‘DMZ생태연구소’에 요청해 마련한 비무장지대(DMZ) 생태탐방에 다녀왔다.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DMZ로 엠마오를 간 셈이다.민통선 너머에서 만난 숲은 참으로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땅속에 매설된 수많은 지뢰는 비무장지대가 한반도 최고의 중무장지대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우리의 평화는 여전히 엄청난 무력으로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4·27..
정부가 비무장지대(DMZ) 일부 지역이 포함된 ‘DMZ 평화둘레길’ 3개 코스를 이달 말부터 단계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대상 지역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감시초소(GP) 철거, 유해발굴 등 긴장완화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고성·철원·파주 등 3곳이다. 이 중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해 해안 철책을 따라 금강산전망대까지 방문하는 동부전선의 고성 코스가 우선 개방된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인 화살머리고지의 GP와 도라산전망대 인근 파주GP 등 DMZ 구간이 포함된 중부 철원과 서부 파주 코스는 유엔사령부와의 협의를 거쳐 개방시기를 결정하게 된다. DMZ 내 철책선 통문을 넘어선 GP 지역까지 시민에게 개방되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이다. 이번 평화둘레길 개방은 의미가 각별하다. 고성, 철원, 파주는..
비무장지대(DMZ). 한국 사람들에게는 현대사의 모든 기억이 교차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나는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 미국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에게 이메일로 관련 문의를 하면서, 군 복무 시절 전방 지역에서 근무했던 경험 등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학창시절 그가 저술했던 화제작 을 읽으며, 여러 부분에 대해 동감도 했고 반대의견도 가졌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보낸 이메일이었다. 놀랍게도 일면식도 없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커밍스 교수가 보내준 답은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DMZ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감정이 벅차오른다면서, 태평양 건너 얼굴도 모르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장문의 답장을 보내주셨다. 사실 당시에 서방의 한국전문가가 DMZ에 대해 그토록 벅찬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개최되면서 전 세계인의 눈과 귀가 한반도를 향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외신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남북한 소식을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고 이러한 관심은 접경지역 관광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대비 임진각 관광지에는 관광객이 평일의 2배, 주말에는 4배 가까이로 늘었고 여행사를 통한 외국인의 접경지역 여행 문의도 2배 넘게 늘었다고 한다. 특히 남북 정상이 만났던 비무장지대(DMZ)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져 지난달 미국의 주요 방송사 CNN은 DMZ의 역사와 여행 방법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DMZ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최근 접경지역 부동산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어느 누구도 관심 없던 곳이 부동산 투자 열풍 지역이 된 것이..
남북한 군 당국이 1일부터 동시에 최전방 지역 확성기 철거에 들어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판문점선언을 통해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겠다고 한 데 따른 첫 조치다. 남북 정상은 “5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남북이 이처럼 판문점선언 이행에 흔쾌히 나선 것은 후속 조치를 기대하게 한다. 남북이 동시에 확성기를 철수시킨 것은 판문점선언 이행을 넘어 양측 간 군축의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합의 나흘 만에 반세기 넘게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이용해온 확성기를 치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첫 단추를 잘 끼웠다. 더구나 북한은 이달 중 국제..
2018 평창 동계올림픽(2월9~25일)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6년여 전인 2011년 7월 개최가 확정된 이후 경기 시설과 KTX·고속도로 등 기본적인 하드웨어 준비는 거의 완료되었다. 이제부터는 소프트웨어다. 대회 준비부터 홍보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잘 챙겨 나가야 한다. 평창 올림픽은 세계 유일의 분단지역인 한반도, 특히 남북이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분단 도(道)인 강원도에서 개최되는 점을 부각하면서 ‘평화올림픽’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어느 올림픽이나 평화는 기본 콘셉트이지만, 평창과 평화의 연관성은 뚜렷하지 않다. 더구나 목전의 우리 한반도 상황은 너무나 위중하다. 일부 외신은 전쟁설을 퍼뜨리고, 또 일부 국가는 이를 이유로 불참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