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서훈제도는 1949년 4월 ‘건국공로훈장령’이 공포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해 광복절,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 유공자로 자신과 이시영 부통령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셀프 서훈이었다. 더 큰 문제는 정권이 독립운동의 공적을 독점했다는 사실이다. 이승만 정권 내내 독립유공자는 이승만·이시영 두 사람뿐이었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하자마자 독립유공자 서훈에 본격 나섰다. 유공자 포상보다는 서훈 확대로 군사정권의 약점을 상쇄하자는 의도가 강했다. 1962년과 1963년에는 각각 유공자 204명과 227명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1965년 한일협정 조인 뒤에는 더 잦아졌다. 이후 서훈을 관장하는 원호처(보훈처)가 설립됐다. 조국의 독립과 건국에 공로가 있는 선열을 기리는 독립유공자 서훈에는 ..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열린 죽산 조봉암 선생 59주기 추모제에 다녀왔다. 해마다 7월31일, 당신이 사형당한 시각인 11시에 맞춰 추모제가 열린다. 그 시각 서울광장에서는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이자 동지였던 고(故) 박정기 선생의 노제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7월은 유난히 기억해야 할 죽음이 많다. 여운형 선생이 7월19일, 작가 최인훈 선생과 노회찬 의원이 7월23일, 박정기 선생이 7월28일에 세상을 떠났다. 죽산 선생 추모제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 10년이 훨씬 넘다 보니, 이제는 조금씩 일도 거드는 사이가 되었다. 어떤 행사에 꾸준히 나가다 보면 사람이 들고 나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신경림 선생이 죽산의 장례 풍경을 묘사한 작품 ‘그날’에서 “젊은 여자가 혼자서/ 상여 뒤를 따르며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