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전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아마 안녕할 수도, 안녕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2010년 안태근 전 검사가 장례식장에서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이를 법무부에서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건’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 조사단이 꾸려져 조사를 벌이고 있으니까요. 조사단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L 전 장관님도 조사 대상이라고 밝혔습니다. 조사단에 출석하는 일이 번거롭고 성가시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들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8년 전 당신을 수행하던 안태근 전 검사가 후배 검사를 성추행하던 그 시간과 장소에서 L 전 장관님은 무엇을 보고 들으셨는지요. “내가 이놈을 수행하는 건지 이놈이 나를 수행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신 발언은 무슨 뜻이었는지요. 아마 조사단에서 답변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
대학원 다닐 때 들은 얘기다. 인문대 신임 교수가 술자리에서 성추행하는 장면을 목격한 대학원생들이 그 교수에게 찾아가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가만있지 않겠노라 경고했더니 그 다음부터 아예 술자리에 나타나질 않았단다. 그 교수가 누구인지, 그 후로도 문제가 없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30여년 전 흘려들었던 이 얘기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음은 교수의 잘못된 행동에 즉각 응분의 조치를 취한 학생들의 행동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리라. 당시 음대에도 성추행을 일삼는 교수가 있었다. 학생회가 이 문제를 공식 제기했지만 학교는 그를 잠시 해외에 나가있게 하는 걸로 무마했고 얼마 후 그는 다시 복귀했다. 실험실에서 벌어진 교수의 성희롱을 고발한 한 조교의 용기로 대학 내 성희롱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으나, ..
열다섯 살에 피아노학원 원장 남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서울 시내 대형교회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다는 장로였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두 딸이 있어 집에 몇 대의 피아노를 두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가정식 학원이었다. 90이 넘은 노모와 원장이 늘 집에 있었는데, 그날은 남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하자 괜찮다며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연습하는 게 불편해서 일어나려고 하자 자신이 가르쳐주겠다며 뒤에서 불쑥 껴안고 더듬기 전까지는 그랬다. 엄마는 울면서 돌아온 내게 아빠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더 몹쓸 일 겪지 않고 도망쳐 나와 다행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과연 다행이었을까. 나는 내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
검찰 조직 내 성폭력, 성추행 사건이 한 여검사에 의해 드러났다. 한국 최고의 권력 조직 내, 최상의 전문직이라 여겨지는 검사도 성폭력의 대상이 되어 고통받고 차별받는 현실을 폭로한 이번 사건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계급 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한 것이다. ‘여성’은 여전히 상수처럼 존재하는 가장 열등한 계급이다. 사회적으로 많이 진출했다 하지만 실제 여성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남성의 충실한 내조자 혹은 부속품, 육아와 양육을 전담하는 존재, 남성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용기’라는 인식은 그 뿌리가 흔들리지 않은 채 각종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변주되고 발전해 왔다. 예전의 ‘빨간책’은 디지털화되어 폭력적 이미지들을 쏟아내고 여성은 발가벗겨진 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남성들의 ..
군에 특별 경계령이 내려진 지난 6월 신현돈 1군 사령관은 작전 지역을 벗어나 술을 먹고 만취했다. 그는 군화가 벗겨진 채 수행원에게 업혀 다닐 정도로 인사불성이었다. 그 사건이 알려진 며칠 뒤에는 동부전선 일반전초(GOP) 소속 임 병장이 총기를 난사했다. 그로부터 보름 뒤 한 초등학교에서 육군 소령은 북한 실체를 강의한다며 강제 낙태, 영아 살해, 잔인한 고문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림을 여과 없이 보여준 이 장면에 놀란 어린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고 울었으며 그 때문에 다음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강연의 제목은 ‘나라사랑 교육’이었다. 다시 보름쯤 지나 상습 폭행과 괴롭힘으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이 밝혀졌다. 그리고 두 달 보름 뒤에 검찰은 해군구조함인 통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