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98명이라는 통계청 잠정집계치가 발표됐다. 출산가능여성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1명도 안된다는 얘기다. 이로써 한국은 사실상 세계 유일의 ‘출산율 0명대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지난해 인구자연증가치는 2만8000명으로 역대 최저치였다. 2027년까지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통계청의 예상은 빗나갔고, 100년 뒤 인구가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커졌다. ‘저출산 쇼크’를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한 축이 반 토막 날 위기다. 갈수록 노인 복지·의료·연금 등의 수요는 커질 텐데,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생산·소비가 줄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커진다. 통계청은 출산율 저하 이유로 20~30대 인구 감소, 늦어지는 혼인 연령..
자유한국당에서 모처럼 울림이 있는 정책을 내놓았다. 여당에선 “전근대적이고 해괴망측”하다며 비아냥댔지만, 출산주도성장 정책은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길을 언어유희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제안의 핵심은 많은 사람이 비난하듯 여성들을 출산 ATM으로 만들어 출산율을 높이자는 게 아니다. 그보다도, 제안자는 몰랐겠지만 아이가 있는 가정에 스웨덴,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 선진국 수준의 지원금을 지급해 선별복지를 넘어 보편복지로 가자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제안대로 아기를 낳으면 2000만원, 20세 이하의 모든 국민에게 매년 400만원을 지급한다면 1년에 투입되어야 할 예산은 45조원 정도이다. 큰돈처럼 보이지만, 보편복지를 시행하는 유럽 선진국이 아이 양육지원금으로 사용하는 돈에 비하면 얼마 안된..
젊은 세대의 출산기피 현상에 대한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의 ‘망언’이 논란이 됐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내가 행복하고 내가 잘사는 것이 중요해서 애를 낳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청년들은 행복한가? “청년들이 가치관부터 바꿔야 한다”는 그는 불안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기 어렵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사실 그는 복지예산을 통합해서 아이를 낳은 가정에 “5000만원, 1억원을 지원”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다. 이달 초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출산주도성장”을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모델의 대안으로 제안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통합적 지원을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청년들의 가치관을 문제 삼으니, 그 지원책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취업률, 실업..
‘상도동 유치원’은 하나의 대명사가 될 듯하다. 안전불감증, 무사안일주의, 개발주의가 응축된 대명사. 위태로운 흙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기우뚱 옆으로 무너진 건물은 ‘유치원’이라는, 건물의 외양과 부조화를 이루는 이름과 만나 더욱 극단적 느낌을 자아냈다. 건물이 한밤중에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면 정말 참혹한 결과가 초래됐을 터였다. 유치원 측에서 이미 이상징후를 포착하고 공사업체에 항의했지만 공사업체는 무시했다. 구청에서도 제대로 된 현장 점검조차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눈앞에서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건물을 두고 아무도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상도동 유치원은 결국 철거되어 폭삭 무너져내렸다. 무너진 유치원을 보고 퇴근하던 날, 내 삶의 지반에도 균열이 느껴졌다. 전염병에 걸려 어린이집을 일..
지난해 말 행정자치부가 만든 ‘출산지도’에 이어 지난 주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의 발표문이 가임기 여성을 분노케 만들었다. 출산지도가 ‘여성을 걸어다니는 자궁 취급한다’는 비판 끝에 문을 닫았다면, 원 연구위원의 발표문은 “여성의 스펙을 낮춰 결혼하게 만들자” “여성의 배우자 하향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 문화적 콘텐츠를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만들자”고 밝혀 누리꾼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두 눈을 의심케 하는 발표문은 심지어 ‘저출산 대책의 성과의 향후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를 건 인구포럼의 정식 발표문이었다. 정부기관이 저출산 대책이라고 내놓는 결과물들을 보면 ‘대책’이라기보다는 왜 한국이 역대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는지에 대한 원인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많이 배운 여성’들의 분노로 SN..
아기 울음소리가 끊기고 있다.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출생·사망 통계’를 보면 지난해 총 출생아 수는 40만6300명으로 전년보다 3만2100명 줄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합계출산율)는 1.17명으로 전년보다 0.07명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은 2005년 1.08명으로 최저를 기록한 뒤 2014년 1.21명, 2015년 1.24명으로 소폭 반등했으나 다시 추락했다. 정부는 “혼인율이 떨어지고 만혼 풍조가 고착화하면서 출생아 수가 줄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출생아 수도 40만명에 머물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겠다며 8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었으나 사실상 실패했다. 인구재생산 잠재력이 극도로 저하된 지방의 일부 도시는 지도에서 사..
아닐 미(未), 죽을 사(死).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을 담아 은퇴 후 고령층을 국가에서 ‘미사자(未死者)’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대중매체는 ‘미사자 과잉 사회, 잉여 인구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식의 여론몰이를 일삼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기라도 하는 듯 행정자치부에서는 ‘대한민국 미사자 지도’를 지자체별로 순위를 붙여서 공개한다. 인터넷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늙은이들 잡으러 가자’, ‘우리 도시를 고려장 특화 도시로’ 같은 ‘농담’이 횡행한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가정법이다. 하지만 아마도 독자인 당신에게는 강한 불쾌함과 거부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국가 경제’를 앞세워 멀쩡히 살아 있고 앞으로도 쾌적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는 고령의 시민들을 ‘아직 안 죽..
출산율 끌어올리기 캠페인이 한창이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급기야 교육부 내 미혼 남녀들의 숫자 현황까지 체크해가며 결혼 독려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에 비판적인 이들은 팍팍한 경제 현실을 지적하며 출산율이 떨어지는 주된 원인은 경제적 압박과 불평등에 있으니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선진국’에 근접해가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피할 길이 없으니 해외로부터의 노동력 수입 등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찜찜한 의문이 남는다. 출산율을 직접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아이를 낳고자 하는가이며, 이는 그야말로 그들의 인생관이라는 크고도 복합적인 틀에서 결정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렇게 알량한 몇 가지 사회 경제적 현상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