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을 반대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원전이 미래 먹거리가 될 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경향신문이 입수한 한국전력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건설 사업’ 자료를 보면 원전 수출의 사업성에 의문이 든다. 자료를 보면 한전은 2010년부터 올 9월까지 UAE 바라카 원전 건설에서 매출이익 1조910억원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우선 사업기간이 늘면서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체보상금은 하루 60만달러(약 6억7800만원)다. 그리고 공사비도 수출입은행을 통해 100억달러를 빌려준 뒤 운영수익을 통해 회수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지체보상금과 이자비용을 감안하면 실제 수익은 마이너스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보수정권이 효자사업으..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에게 탈원전, 에너지전환은 재앙이다. 그들 자신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재앙이다. 탈원전은 한국 경제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재앙, 태양광은 중금속 범벅의 처치 곤란 폐기물 더미만 남기는 재앙, 풍력발전은 산과 들과 어장을 망치는 재앙일 뿐이다. 이들에게 재앙이 미치는 범위는 대단히 좁다. 남한이라는 공간, 현재라는 시간, 돈이라는 물적 가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지구와 미래라는 시공간, 행복한 삶이라는 가치는 일고의 고려 대상도 되지 못한다. 전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걸린 기후변화는 저 멀리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핵폐기물을 떠안을 후손들의 행복은 더더욱 관심 밖이다. 자기 이익을 지킬 수만 있다면 필요한 자료와 수치를 부풀려 에너지전환을 공격하는 것만이 이들의 주요 관심사이..
또다시 원전안전을 위협하는 발견이 있었다. 한빛원전의 격납용기벽에서 민관합동조사단이 안전이 의심되는 69개소를 조사하여 그중 14개소에서 공극을 추가 발견한 것이다. 이전 한수원 자체 조사로 격납건물 매설판 보강재 주변에서 2017년 2개소, 2018년 6개소의 공극(8㎝ 이하)을 발견했던 것이, 이번에 조사단에 의해 깊이 20㎝ 이상의 예상보다 큰 공극 3개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격납건물 벽체 콘크리트에 공극이 존재하면 콘크리트의 지지강도가 떨어지므로 안전성능이 약화된다. 2016년 한빛 2호기에서 철판 부식에 의한 천공이 처음 확인된 이후 주민들이 요구한 확대검사에서 18㎝에 이르는 깊이의 콘크리트 공극이 확인된 바 있다.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더 발견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추가적인 확대..
114년 만에 찾아온 폭염은 세계 기후변화에 한반도가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이에 따라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독일, 미국, 중국 등 주요 경제국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세계 에너지원 비율이 가파르게 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석탄, 원자력, 석유가 20% 이상 감소했고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는 30% 이상 증가했다. 우리는 작년에 뒤늦게 에너지전환에 합류했다. ‘탈원전, 탈석탄, 친재생’으로 요약되는 우리의 에너지전환은 세계적 추세의 일부분만 반영한 상태이다. 대표 정책인 ‘재생에너지 3020’도 세계 변화 속도보다는 늦다. 국가별로 처한 상황이 다른데 우리는 왜 세계 에너지전환을 따라야 하는가. 이제 ..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만 1년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 1년에 대해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는 극과 극을 오가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지만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은 83%로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1주년 지지율 중 가장 높다. 어쩌면 일반국민은 남북정상회담 성공으로 안보불안이 현저히 줄어든 가운데 문 대통령이나 문 정부가 지금껏 보여온 국정 개혁의지의 진정성을 신뢰하면서 당장의 정책 효과에 연연하기보다 아직은 지지를 보내야 할 때라고 판단하기 때문 아닐까? 그간 누적되어온 문제를 해결하는 데 1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에너지정책의 주요 기조는 탈원전·탈석탄이라 불리는 원전과 석탄의 단계적 감축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즉 ..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온몸으로 뛰고 있는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지난달 30일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도 있는 핵 재처리 연구 개발을 2020년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용후핵연료를 건식 재처리하여 이를 연료로 쓰는 고속로라는 원자로를 연구 개발하겠다는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은 1997년부터 20년간 6700억원의 혈세를 낭비했지만 경제성도 안전성도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를 실제 하려면 한·미 원자력협정상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한데, 원자력계가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여 연료로 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핵 확산 가능성이 있는 재처리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공약하였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순탄하지 않다. 탈원전에 대한 일부 언론의 편향·왜곡 보도, 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부적절한 관여, 시민대표참여단의 지역·연령별 선발기준 논란 등으로 공정성 문제가 불거져왔다. 안전, 경제, 환경 등의 의제에 대해 건설 중단과 재개 양측이 제시하는 팽팽하게 대립되는 주장도 어려움을 더해준다. 건설 중단 측이 활성단층의 존재,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 비상대피 구역 내 382만명의 지역주민을 거론하며 안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면, 재개 측은 세계 최고의 핵발전 기술과 안전성을 믿으라 주장한다. 점진적 에너지전환이 가능하다고 하면, 전기요금 폭탄을 각오하라고 한다. 재생에너지산업이 창출할 양질의 수많은 일자리에는 탈원전으로 인한 대규모 실업 사태로 맞받는다. 모두가 ..
내겐 여든여섯의 연로하신 아버지가 계신다. 아버지는 학도병이자 직업군인 출신이다. 어린 나이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각오로 고등학교 재학 중 학도병에 자원하셨다가 6·25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영천 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으셨다. 가난한 집 장남이라 더 공부할 여건이 되지 못했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고교를 졸업한 후 바로 직업군인이 되셨다. 육사를 나온 것도 아니고 윗사람에게 허리 굽히고 청탁하는 성격도 못되어서 10년 이상 대위로 계셨다. 그러다 지뢰 폭발사고로 머리와 다리를 크게 다쳐 전역하셨다. 몇 년 후 국가유공자가 되셨다. 이런 인생 이력을 가진 아버지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그래서 내가 대학에 진학한 후 아버지와 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의견이 갈린 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