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름에 택시를 타야 했다. 마침 택시 정류장에 택시 한 대가 들어와 섰다. 얼른 올라타면서 죄송하지만, 좀 먼 곳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30년 가까이 택시 승객으로 살면서 눈치껏 터득한 요령이었다. 기사가 거절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공손하라! 그런데도 퇴근 시간에 시외 장거리 운전을 마뜩잖게 여길 거라 생각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택시 승차 거부야 이골이 났으니까. 그런데 젊은 기사는 순순히 미터기를 켜면서 차가 많이 막힐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대화에 적절하게 응대하며 안전 운전에 기여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는 조용했다. 그가 입을 뗀 것은 외곽순환도로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미터기를 끈 뒤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길을 잘못 들었어요. 10분..
마흔 중반에 아쉽게 죽은 소설가 조르주 페렉. 대표 소설 . 엉뚱하고 다양한 군상들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총포의 위협 앞에서 수술하는 외과의사, 빅토르 위고의 편지 세 통을 발견한 헌책방 주인, 한 신문에서 자신의 부고 기사를 발견한 마크 트웨인, 러시아 출신 여가수의 피아노를 조율하는 맹인, 채식주의자의 수프에 고깃가루를 넣은 학생, 아파트 월세를 높여 받을 생각 중인 건물 관리인, 왼손 세 손가락을 잃고 낙담하는 실험실 조교, 6개월 동안 방에서 나가지 않은 대학생, 한국에서 자신의 순찰대를 죽게 만든 미국인 탈주병, 사위가 면도할 때 더운 물을 뚝 끊어버린 장모, 삽화가 있는 기사를 시큰둥하게 들여다보는 간호사….” 이처럼 세상엔 사람들이 많고 사람마다 모두 제각각 다르다. 겉 다르듯 속도 다..
황석영, 이재의, 전용호가 5·18광주민주화운동 상황을 기록한 (넘어넘어)를 읽다가 눈물을 쏟았다. 는 1985년 출판되자마자 판매금지됐으나 당시 시민·학생들이 몰래 복사해서 돌려 읽던 ‘지하의 베스트셀러’였다. 얼마 전 개정판이 나온 것은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 중학생과 고등학생들까지 계엄군에 희생당했다. 그런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그냥 철딱서니 없이 구경만 하는 학생이었다. 이후 역사의 공간에 있던 5·18이 다시 ‘현재’로 소환될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꼈다. 죄책감이다. 부끄러움으로부터 도망쳐 오랫동안 복음주의 기독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부끄러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수치심과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