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시청역 1번 출구를 나와 덕수궁 돌담길을 거쳐 정동교회를 지난다. 그 길 끝에 경향신문이 있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바닥을 수놓는 아름다운 출근길이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묵직한 숙연함이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혼란스러웠던 구한말의 역사와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길에는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이 있고, 아관파천의 무대였던 구 러시아공사관이 있고, 을사늑약을 맺은 중명전이 있다. 또 유관순 열사 동상이 교정을 지키는 이화여고가 있다. 얼마 전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하얀 천이 쳐졌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고종황제의 국장을 재연한 것이라고 했다. 고작 100년 전만 해도 이 땅에 왕이 있었고, 주권 잃은 왕의 타살 의혹에 민중들은 분노했다. 이 땅은 일제 치..
-2019년 3월1일자 지면기사- 오늘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1919년 3월1일 서울·평양·진남포·안주·의주·선천·원산 등 7대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끝이 아니었다. 운동은 3월 한 달 내내 전국을 휩쓸고, 5월까지 국내외에서 계속됐다. 참가자 200여만명.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거족적 민족운동이었다. 3·1운동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고종의 죽음은 3·1운동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그러나 3·1독립선언서는 군주가 아닌 조선인을 나라의 주인이라고 못 박았다. 만세운동이 확산되면서 군주는 잊혔다. 복벽주의 이념도 사라졌다. 1919년 4월11일 상해임시정부는 의정원 임시헌장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명시했다. 임시정부는 여성에게도 보통선거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