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란 ‘다른 기업에 의해 자본적으로 종속되어 지배를 받는 기업’이다. 즉, 주식의 절반 이상을 모회사가 소유하면 자회사가 된다. 단 한 주의 주식을 소유하지 않아도 물량이나 사업의 지배적 지위에 있는 원청이 자본까지 소유하니 가히 절대자다.
이를 두고 정부는 원청, 모기업의 책임이 높아지고 수시로 바뀌는 용역업체가 아니니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담보할 수 있다고 우긴다. 용역, 파견, 위탁을 줄 때는 공기업이 나쁜 사용자였는데, 자회사를 두는 순간 갑자기 착한 사용자로 바뀐단 말인가? 순진하게 그 말을 믿었다가 뒤통수가 얼얼한 노동자들이 많다.
용역, 파견, 위탁 등으로 인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문제점은 고용불안과 낮은 임금, 열악한 처우로 압축된다. 자회사로 변경된다면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낙찰을 받지 못한 하청업체와, 자본을 회수당한 자회사의 운명은 같다. 그래서 여전히 고용이 불안하다. 예산을 늘리지 않고 하청업체 운영에 쓰이던 비용을 처우 개선비로 활용하는 구조이다 보니 임금인상도 요원하다. 자회사도 운영하려면 비용은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한 하청업체 관리자들이 그대로 자회사 임원, 관리자가 되니 부당노동행위는 계속되고 도대체 뭐가 바뀐 거냐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대로 자회사 정책이 옳다면 적어도 소속된 노동자들의 평가도 긍정적이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높다고 하더라도 고용이 안정되고 임금이 인상되었는데 악다구니를 하는 노동자들은 없다. 그런데 지금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속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년이 축소되고, 임금이 하락하는가 하면 공정 채용이라는 미명하에 전환 과정에서 버려진 자들도 다수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부문의 노동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시장의 기준과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자회사 정책을 목격한 민간부문은 어떻게 작용할까? 정부가 자회사도 정규직이라고 우기니 민간도 열심히 따라 배운다.
최근 몇 년간 민간 비정규직의 쟁점은 불법파견이었다. 하청, 도급으로 위장된 불법파견을 바로잡고자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도 소송도 진행했다. 완성차와 부품사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노력은 속속들이 법원의 승소판결로 이어지고 있다. 그간의 불법을 인정하고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사용자들은 회피하고자 했다. 여기에 정부가 자회사라는 시의적절한 면피를 제공한 것이다.
실제로 불법파견 소송을 진행 중이던 현대위아 평택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등법원에서도 승소하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사측은 기존 하청업체를 폐업하고 자회사로 가라고 강압했다. 가지 않으면 평택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 울산으로 출근하라고 했고, 울산엔 텅 빈 공장만 있었다. 200여명의 노동자들 중 절반이 소송을 포기하고 자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현대위아뿐만 아니라 불법파견 소지가 있는 수많은 사업장은 속속 자회사로 포장지를 갈아치우고 있다.
우리는 ○○○네트웍스, ○○○파트너스가 아니라 내가 일하는 곳의 직원이고 싶다. KTX승무원은 코레일이,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은 한국도로공사가, 건강보험 상담을 하는 콜센터 직원은 건강보험공단이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인가? 정부는 자회사도 정규직인 이유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만 설득력이 없다. 거짓은 복잡하고 진실은 단순명료한 법이다.
자회사는 정규직이 아니다. 수많은 자회사, 손자회사를 거느린 네이버나 카카오가 그들을 쓰다 버리는 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정부의 노동존중 결과물이 아니라 비정규직 천만 시대의 요구이다. 청년들에게 공공부문 양질의 일자리를 확대할 것인가, 자회사로 내몰 것인가 선택의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거리에 선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