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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세상을 멈추게 하려는 힘에 맞섰던 힘겨운 시기였다.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맹렬한 향기’가 되어 함께 견뎌냈다. 내일이면 2022년이 시작된다. 한 해가 저물어 아쉬운데, <백종원의 골목식당>까지 막을 내려 서운함이 크다. <골목식당>은 12월29일 200회로 1445일간의 대장정을 끝냈다. 전국 자영업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고, 시청자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귀한 프로그램이었다.
<골목식당>이 처음 방영되던 때가 2018년 1월5일이었다. 이화여대 앞의 소바집, 햄버거집, 일본라멘집, 백반집을 촬영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후 충무로, 공덕동으로 이어졌고, 고대 정문 앞을 끝으로 38개 골목에서 132개 가게를 누볐다. ‘전국 지역경제 살리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내걸고, 골목이 품은 이야기들을 맛깔스럽게 끄집어냈다. 누군가는 이 프로그램에서 에너지를 얻었고, 누군가는 가족과 사랑의 소중함을 느꼈으며, 또 누군가는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발견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골목식당>이 한국 TV프로그램에서 찾기 힘든 보통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그대로 담아냈다는 점을 높게 사고 싶다. 노동이 사라지고, 예능만 넘쳐나는 시대다. 이 프로그램은 실패의 경험으로 상처받았던 이웃에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야기가 있는 골목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골목으로 변했다. 골목식당 이야기들은 ‘새롭게 거듭남으로써 맛의 기억’들을 창조해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서울의 이문설농탕(1904)이다. 그 뒤를 중식당인 진아춘(1925), 추어탕집인 형제추어탕(1926)이 잇고 있다. 대략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근대적 형태의 식당이 번창하기 시작했으니, 한국의 오래된 식당들도 100~1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셈이다. 조선시대에도 식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6세기 중엽에 여점(旅店)·야점(夜店)·점막(店幕)·주막 등 사설 가게들이 등장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에는 술집 겸 밥집인 주막이 일반적이었다. 왜 조선시대의 그 많던 주막들은 근대 식당으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만든 근대적 법률인 ‘요리음식점영업취체규칙’ 때문이다. 음식점이나 요리점을 운영하려면 국가기관의 허가를 받도록 제도화했다. 이로 인해 기존에 존재하던 주막들은 명맥을 잇지 못했고, 대신 근대적 식당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부 성공한 중대형식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골목식당은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운영되어왔다. 자영업자를 위한 교육기관도 없고, 물어볼 데도 없어서 알음알음으로 조리와 식당관리가 이어져와 실패의 수렁들을 만들었다.
<골목식당>은 한국 식당 운영 방식을 근대화한 혁명적 문화 운동이었다. 먼저 음식문화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백종원이 주방에 들어가 위생상태를 점검했을 때, 식당 주인들은 하나같이 긴장했다. 그들은 자신의 사적이고 내밀한 세계가 갑자기 공개되는 것 같아 수치심을 느끼는 듯했다. 시청자들은 엿보는 자의 아슬아슬함을 경험하면서 주방의 비위생적 상태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했다. <골목식당>에 등장하는 가게들은 방영이 거듭되면서 조리방법도 계량화하고 정량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정확한 계량화와 체계화된 조리 순서도 근대적인 합리성과 연결된다.
다음으로 삶에 대한 성찰성과 깨달음의 서사가 구현되는 방식에 주목하게 된다. <골목식당>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발견하고, 고통스러운 훈련을 통해 시련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는 처음과는 다른 변화를 이뤄내는 계몽의 서사를 담아냈다. 시청자들은 식당 주인의 각각의 개성적인 대응방식을 보면서 인생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깨달음의 쾌감을 얻었다. 생존의 절박함에서 시작한 순응적 변화가 결국 어떤 방향으로 삶을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깨달음의 서사’로 이어졌다. 삶은 변화의 연속이지만, 변화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다. 그렇기에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맛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한다. <골목식당>을 통해 삶의 방향에 대한 중요한 결정은 여전히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자영업자 피해가 가장 크다. 거리 두기의 직접적 영향으로 550만명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의 고통에 찬 호소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골목식당>을 통해 들을 수 있었던 생생한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아쉽다. 누구보다 고통의 현장 가까이에서 힘겨워하는 자영업자들에게, ‘힘내시라고, 조금만 더 서로에게 강렬한 향기가 되어보자’고 응원의 말씀 올린다.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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