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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신문 기사, 뉴스 단신, 라디오 프로그램이 고층 아파트의 삶을 담으려 했다. 그 뜻은 고귀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은 금방 휘발되었다. 진열창 앞 안전한 거리에서 원주민을 잠시 둘러보는 사파리가 끝나고 나면 모두가 그에 대해 서서히 잊어버리고 만다.”

2017년 영국 런던의 24층 아파트 그렌펠타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4층에서 시작된 불은 오래된 건물의 값싼 인화성 내장재를 타고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져나갔다. 주민들이 잠든 새벽시간에 벌어진 참사에 대피는 늦어졌고, 진입로가 하나뿐이라 화재 진압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임대 아파트로 이주민과 저소득층 주민들이 거주하던 바로 이곳에서 70명이 넘는 사람이 숨졌다. 화재 이후 미디어의 관심이 쏟아지고, 청문회가 열리고, 반면교사를 삼자며 백서까지 만들어졌다. 화재 이전에도 그렌펠타워 주민들은 블로그 등의 방법으로 화재의 위험을 이야기해왔다고 하는데. 그땐 왜 아무도 이 문제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작가 대런 맥가비는 <가난 사파리>에서 가난을 바라보는 미디어와 사람들의 태도가 구경꾼과 같다고 비판했다.

최근 또다시 불거진 임대아파트 논란에 공간과 가난을 보는 시선을 돌아본다. 2018년 임대아파트를 다룬 EBS 다큐멘터리 제목은 <도시의 섬>이었다. “엄마, 아이들 엄마가 임대아파트 아이들하고 놀지 말라고 해”라는 말에 한 주민은 가슴을 쳤다. 복잡한 도시 한가운데 홀로 떨어진 외로운 섬이라는 제목이 이들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진 것 같아 슬프다. ‘휴거’라고 임대아파트 거주자를 칭하거나 ‘가난한데 아이를 왜 이렇게 많이 낳느냐’는 식의 반응에는, 설령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차별과 혐오가 깔려 있다. ‘그런 의도는 없었다’며 은연중에 침식한 인식은 얼마나 무디고 무신경한가.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도 새삼 자문해본다. 새로운 소식을 찾아 헤매는 것이 보도의 속성이라지만, 혹시 그 핑계로 ‘구경꾼’의 시선이지는 않았는지.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여겨오지는 않았는지를 말이다.

반면 공간과 가난을 보는 이런 시선도 있다. 1986년 사당동 철거촌에서 만난 한 가족을 지금까지 꾸준히 기록한 사회학자 조은 교수의 작업이 그것이다. 2020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사당동 더하기 33>은 조은 교수가 금선 할머니의 4대를 지켜본 내용을 담았다. 33년간 가족의 공간은 철거촌에서 임대아파트로 변화했으되 가난은 변치 않았다. 영화는 이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사당동 더하기 33>은 이런 자막으로 끝이 난다. “이 가족의 생존에 대한 의지와 강인함은 경계가 없었다. 가난의 무게를 담을 수 없었다.” 수십년간 한 가족과 그들의 이야기에 천착했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담아낸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큰 울림을 준다.

조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하는 바라본다, 응시한다, 관찰한다 등의 개념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제가 가지고 있던 고민은 그들의 일상에 배어 있는 불안정성을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통해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였다.” 그 고민을 함께 곱씹고 또 곱씹어 본다.

이지선 뉴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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