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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면 어머니는 팔남매 자식들

봉다리 봉다리 챙겨주기 바쁘다

큰아그는 자식들 많항께

쌀도 두 차뎅이는 가져가그라

제찬 남은 것도 떡 쪼가리도

여덟 개로 나누어

왁자한 명절 끝에 내 집에 오는 날엔

여섯째인 내게도 서너 개의 봉다리가 주어진다

본가에 갈 때마다 달라붙는 봉다리 때문에

나는 빈 봉지 모아 어머니께 드리지만

어머니의 손을 거친 봉다리들은

어김없이 배가 불러 돌아온다

몇달에 한 번쯤 뵈는 어머니의 얼굴

날이 다르게 검버섯이 늘어난다

어머니의 늘어가는 검버섯

자식들에게 퍼주던 것들

봉다리 봉다리 들어낸 자죽이다

이대흠(1967~)

팔남매 중 여섯째인 시인의 나이는 쉰넷. 그 시절에는 자식을 많이 낳았다. 보통 한 집에 대여섯명, 어머니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큰애가 작은애를 업어 키웠다. 집안의 기둥인 장남은 예외였다. 장남이 잘돼야 집안이 일어선다며 조금은 특별 대우했다. 그래야 이다음에 따뜻한 제삿밥이라도 한 그릇 얻어먹는다고 생각했다. “큰아그는 자식들 많항께” 더 챙겨준다 했지만, 실은 장남이기 때문이다. 동생들도 이를 모르지 않지만, 조용히 넘어간다.

어머니는 손이 크다. 명절에 본가를 찾은 자식들에게 바리바리 싸준다. “여덟 개로 나누”었는데도 여섯째의 손에 “서너 개의 봉다리”가 들려 있다. 이럴 땐 왠지 봉지보다 봉다리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봉다리마다 어머니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태운 차가 사라지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든다. 조용하다가, 왁자지껄하다가 적막해진 집에서 어머니 혼자 눈물을 훔친다. 코로나19 때문에 올 설날은 더 외롭고 쓸쓸하겠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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