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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바다에) 살어리랏다// 나마자기(나문재)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

고려 사람의 노래 ‘청산별곡’의 한 구절이다. ‘구조개’는 굴만을 이르기도 하고, 굴과 조개를 아울러 이르기도 한다. 한반도 신석기시대 이래의 일상을 켜켜이 간직한 유적인 조개무지에도 굴껍데기는 흔하다. 1123년 고려에 사신으로 온 서긍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도 재밌다. 서긍에 따르면 고기는 힘 있는 자들이 먹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수산물이 만만했다. 더구나 “굴과 대합은 조수가 빠져도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하므로 사람들이 힘껏 거두어들여도 없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실로 고려 백성들은 ‘구조개’를 먹고살았던 것이다. 조선 사람 허균도 <도문대작>(1611)에다 굴 이야기를 남겼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함경남도, 강원도 바로 위 해역의 굴(石花)은 대단히 큰데 서해안의 씨알 작은 굴의 맛에는 못 미친단다. 이어 동해안의 석화(윤화·輪花)는 씨알 굵은 놈이 맛이 달다고 썼다. 미식에 눈뜬 사람들에게 굴은, 그 산지를 비교해 음미할 만한 식료였다.

굴은 젓갈로 쓰기에도 딱이다. 19세기 조리서 <시의전서>에 이미 굴젓이 따로, 어리굴젓이 따로다. 어리굴젓은 얼간을 해 산뜻하게 맛을 내는 쪽으로 갈래를 잡은 젓갈이다. 어리굴젓은 돼지기름에 잘 부친 빈대떡과도 최고의 한 쌍이 된다. 곰삭아도 좋다. 진석화젓은 소금에 절여진 굴의 즙을 받아, 그 즙을 다시 달여 부어 더 익힌 별미이다. 심심한 듯 삼삼하게 해 후루룩 넘기는 통영 권역의 물굴젓도 지나치기 아깝다. 굴은 김치, 깍두기에도 빠지지 않는다. 식민지시기의 중요한 조리서 어디에나 굴깍두기가 등장한다. 그 가운데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을 참고하면 굴깍두기는 큰 무 셋에 굴 한 보시기는 써야 한다. 이는 굴을 더 맛있게 먹자고 담근 깍두기 아닌가. 아니, 한국인은 굴을 얼마든지 날로 만끽할 때 후련한 민족이겠다. 여기 무얼 곁들이면 풍미가 한층 더할까. 초간장은 뻔하지 않다. 꿀 또는 조청·잣가루·다진 총백을 활용한 초간장 연출은 해본 사람만 안다. 초고추장 또한 생굴에 맞는 칼칼한 신맛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잘 갠 겨자라면 이보다 우아한 연출도 없으리라. 식초에다 초피 또는 후추로 방점을 찍어도 좋겠다. 유럽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생굴에 레몬 또는 라임 즙을 더한다. 그렇다면 고흥 유자·제주 귤피는 어떨까. 홑으로도, 장과의 배선으로도 가능성이 높다. 굴이 튀김·전·전유어·찜·구이·산적·물회·무침·회·훈연굴 등등으로 벋는 모습을 상상한다. 젓갈과 김치는 당연하다. 장·초·감귤류며 초피에 겨자 따위를 활용할 궁리도 해본다. 책상머리에서지만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찬바람 분다. 굴이 온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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