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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동요 ‘상어 가족’의 동영상이 74억 조회수를 돌파하며 전 세계 1위에 등극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구인 공식인구가 77억명인데 말이다. 알록달록한 군복을 입은 진지한 표정의 미군들이 “베이비 샤크(baby shark) 뚜루뚜루~”를 부르며 행진하는 영상이 화제가 된 지 1년여 만이다.

언제부터인가 동양인이 뚫기 어려웠던 서구의 문화적 장벽들을 한국인이 깨뜨려가고 있다. 관세청 자료에 의하면,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얼어붙은 가운데서도 음반·영상물의 수출액은 역대 최고를 기록해 전년 대비로도 95% 가까이 성장했다고 한다. 시장 역시 각 대륙으로 고르게 뻗어나가고 있다.

눈여겨볼 것은, 이러한 흐름이 단순히 한국 연예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호황 수준을 넘어 아시아인 전체의 자존감 상승에 상당 부분 기여한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 체제에 길들여진 대다수 아시아인은, 자신도 모르게 백인들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가 하면 일본처럼 스스로 백인이라는 자기 최면을 걸거나 북한·동남아 일부 국가처럼 외부와 담을 쌓고 고립됐다. 역으로 중국처럼 자아비대증에 빠지거나 중동처럼 백인을 증오 범죄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타자에게 지배되고 유린되는 상처는 개인이건 집단이건 깊은 정신적 상흔을 남긴다.

비극적 근대사의 후유증을 떨치고, 다시 아시아인이 세계의 정상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한류다. 봉준호와 BTS, 블랙핑크, 손흥민 외에도 각 방면의 무수한 인재들이 차근차근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국 연예인들의 사진을 보며 자신들의 눈은 왜 이리 쌍거풀이 크고 코가 높으냐고 속상해하는 서양인이 생기고, 한국어로 세계 인권을 논하며, 레바논 정부의 조세정책 반대 집회에서 아기 상어가 불린다. 전문가들은 많은 젊은이들이 단지 이들에게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꿈의 롤모델로서 일체감을 갖는다고 이야기한다. 벽을 깨는 자로 인해 “우린 안 돼”라는 트라우마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왜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 중에 이 작은 나라 한국이냐는 질문이다. 이 부분에서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폭넓은 시각으로 한류를 바라본 전문가들은 뜻밖에도 한국의 민주화가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 역사적으로 모든 문화예술은 가장 자유로운 시기에 꽃을 피웠다. 창의성의 핵심 동력은 자율과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 대다수 국가들은 여전히 혼탁한 관료제와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화 예술인들은 겉은 화려하나 노예계약과 권력의 노리개로 고통 받는 경우가 다수다. 개별적인 스타는 있으나 세계 무대의 정상에 선 이도, 흐름을 주도한 시스템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치열한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많은 부분 투명성이 강화되었고, 더 나은 제도를 진전시키고 있다. 한류는 업계와 개인의 노력만이 아닌 국민들이 만들어낸 창조물이기도 한 것이다. 부족하지만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는 최선을 다해 근대의 트라우마에서 꽤나 자유로워진 후세대를 만들어냈다.

공수처 개정안이 통과됐다. 어떤 법이건 악용될 수 있으며 공수처가 만병통치의 한 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역효과가 무서워 내딛지 못할 걸음이라면 역사는 진보할 수 없다. 더 이상 제2의 장자연이나, 버닝썬 같은 법과 권력이 결탁한 추악한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양한 견제장치의 하나로서 역할을 기대하며 감시할 것이다. 민주화와 한류를 국민이 일구어냈듯 김영란법도, 공수처도 특정 세력의 성과가 아니라 국민의 요구다.

‘봉준호와 BTS, 블랙핑크, 베이비 샤크’의 공통점은 모두 ‘ㅂ’으로 시작한다는 유머가 있다. 2021년엔 여기에 새로운 ‘ㅂ’, ‘법조 개혁’을 추가해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국가로 성실한 한 걸음을 내딛기를 기대해 본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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